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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리 안에는 ‘마피아’가 없습니까?

입력
2014.08.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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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알고 지내는 모 금융회사에 다니는 40대 중반의 A씨. 그는 각종 친목모임에 매우 열심히 참석한다. 그가 꾸준히 참석하는 것만 줄잡아 예닐곱 개. 회사 안팎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관련 모임이 대다수다.

솔직히 그의 성격은 꽤 내성적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썩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많은 모임에, 그것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다.

얼마 전 사석에서 A씨는 그 뒷얘기를 털어놨다. 그는 이런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된 건 5년쯤 전부터라고 했다. 한 고등학교 선배의 충고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봐, 당신이 얼마나 비싼 자산을 방치해 놓고 사는 건 줄 알아? 남들은 아무리 갖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도 가질 수 없는 자산이란 말야. 조금만 공을 들이면 엄청난 자산이 될 텐데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고 있냐구.”

그는 대한민국에서 인맥 파워가 손에 꼽히는 고등학교와 대학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A씨보다 못한 자산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또 주변에서 그 자산들이 얼마나 폭넓게 이용되는지를 심심찮게 목격해 온 나로서는 가슴은 아니지만 머리로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얘기였다.

사실 주변에서 인맥과 연줄의 위력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연줄을 동원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다는 그런 높은 분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제조업체건 금융회사건 인사철만 되면 온갖 줄서기가 횡행한다. 그 뒤엔 학연, 지연 등의 연줄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다. 누구는 ‘OOO고 인맥’으로 승진을 했다느니, 누구는 ‘XXX대 OO과’ 인맥으로 영입이 됐다느니 온갖 해설기사들이 난무한다.

나를 비롯한 기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적지 않은 기자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출입처가 바뀌면 누가 본인과 같은 학교를 나왔는지, 누가 본인과 같은 동향인지 호구조사를 한다.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취재에 도움을 얻어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울타리가 쳐진다.

이쯤 되면 발끈할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순수한 친목 모임이나 인간관계를 그렇게 삐딱하게 바라보는 게 말이 되느냐” “한국 사회의 끈끈한 정(情) 문화를 그렇게 폄하하면 안 된다” 등등. 하지만 잘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이런 연줄의 힘을 조금이라고 얻어 본 적은 없는지, 혹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우리들의 모습에서 나는 세월호 참사로 민낯을 드러냈던 관료집단의 ‘마피아’ 근성을 발견한다. 연줄은 마피아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들 마피아 힘의 근원은 좋게 말하자면 요즘 한창 유행한다는 ‘으리(의리)’다. ‘해피아‘(해양수산부) ‘국피아’(국토해양부) ‘금피아’(금융감독원) ‘철피아’(철도) ‘세피아’(세무) 등 각종 다양한 관피아들은 그들끼리 높은 울타리를 쳐놓고 서로 밀고 끌어준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이제 주변에서 하나 둘 관피아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 추세라면 아마도 관피아는 이제 이 사회에 더 이상 발을 붙이기 쉽지 않을 듯싶다. 모든 능력 있는 관료들까지 다 관피아 조직원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의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나고, 또 우리의 망각이 관피아의 부활을 용인하는 때가 올 수도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세월호 이전으로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피아의 민낯은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관피아가 없어진다고 과연 우리 모두 안에 내재돼 있는 마피아가 사라질 수 있을까. 혹시 그게 불법이나 부정이 아니라면 누군가 나에게 내미는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받아 든 제안의 손길을 또 다른 이에게 내밀어야 하는 ‘의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 안의 마피아를 떨쳐내지 않는다면, 또 다른 탈을 뒤집어쓴 각종 ‘피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밖에 없다. 이미 관피아의 빈 자리에는 ‘정피아’(정치인)과 ‘교피아’(교수) 등이 빠른 속도로 비집고 들어서고 있지 않은가.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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