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성지고 학생 439명 설문 "일반 학교 땐 수업 이해 못해" 절반 응답
"따로 교사 지도받은 적 있다"는 14%뿐, 대다수가 "이 학교 온 뒤 커다란 변화"
한국일보가 대안학교인 서울 강서구 성지고 1~3학년 4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학교의 분위기가 학생들에게 학습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성지고는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전학 오는 대안학교다. 공부에 관심이 전혀 없어 학교를 다닐 의미를 못 찾는 학생들, 엇나가 ‘문제아’로 찍혀 받아주는 학교가 없는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다. 성지고에서는 대학에 가기 위한 진학반과 함께 조리 제빵 피부미용 등 전문 직업교육을 병행한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낙오자 취급을 받던 학생들은 학교가 달라지자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지고 학생들은 전학 오기 전 일반 학교에 다닐 당시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학생이 절반(거의 모름 17.7%, 30% 정도만 이해 31.7%)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교사로부터 따로 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는 학생은 응답자의 14.4%(62명)에 불과했다. 명문대에 몇 명을 보냈는지 진학실적을 중시하는 학교들이 표 안 나는 부진학생 지도에 소홀한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학생들은 또 ‘수업 중 이해 못하는 학생이 있어도 그냥 넘어간다’(35.5%ㆍ156명), ‘공부 못하는 학생을 차별한다’(24.8%ㆍ109명), ‘공부를 못해서 차별당한 적이 있다’(22.3%ㆍ98명)고 응답했다. 자연스레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44.4%ㆍ195명)거나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35.3%ㆍ155명), ‘공부 때문에 자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20.3%ㆍ89명)는 응답으로 이어졌다.
성지고 3학년 A양은 “공부 잘하는 몇 명만 데리고 수업을 했고,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학생들도 가차없이 버리고 수업을 했다”고 과거 학교에서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1교시부터 집에 갈 때까지 담요를 덮고 엎드려 자도 교사들은 깨우지 않았다”며 “어차피 공부 안 할 애들이라고 학교를 안 나와도 신경도 안 썼다”고 덧붙였다.
이는 전국의 학교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경남의 한 교사는 “반 배정이 되면 교사들 사이에선 ‘우리 반에 학습부진아가 있네. 반 평균 또 깎아먹겠네’하는 분위기”라며 “안 그래도 행정 업무 등 신경 쓸 게 많은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학습부진 학생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경기의 한 중학교 이모 교사는 “중3만 되도 이미 학습된 무력감이 굉장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며 “수업 분위기를 흐릴 수 있기 때문에 방해되지 말라고 일부러 재우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관심과 차별을 받으면서 학습동기도 자연스레 떨어졌다. 응답자의 31.6%(136명)는 수업시간에 딴짓을 했다고 답했다. “이해가 안 되고 재미가 없어서” “교사가 관심을 주지 않아서” “이미 공부하기에는 늦어서” “대학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느라” 등 이유로 학생들은 수업 참여를 기피했다. 이들이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복수응답 가능)은 재미없는 수업(21.7%), 하고 싶은 공부나 활동, 취미생활을 못하는 것(18.6%), 성적이 나쁜 것(16.2%), 생활지도나 교칙에 대한 불만(14.3%) 등이었다.
이렇듯 공부상처를 안고 성지고로 옮겨 온 학생들은 큰 변화를 보였다. 학업에 대한 관심과 의욕, 인간 관계 개선, 학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 변화의 주된 내용이다. ‘수업에 관심이 생기거나 참여하기 시작했다’(16.9%)거나 ‘공부하고 싶은 동기가 생겼다’(16.8%)는 학생이 33.7%였고 11.4%는 실제로 성적이 올랐다고 답했다. 또 교우관계가 좋아지고(15%),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관계가 친밀해졌다(11.8%)고 답했다. ‘교칙이나 수업에 대한 부담이 사라졌다’는 응답도 15.8%였다. 큰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은 4.9%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학교규범이나 교사관계, 수업부적응 등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27.2%)는 점과 함께 ▦수업이 쉽고 재미있어서(25.8%) ▦수업 외에도 배우거나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24.4%) ▦선생님들이 나를 존중해줘서(22.5%)라는 점들을 꼽았다.
성지고 2학년 B양은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하면 같은 학교 학생 취급도 안했다”며 “매일 혼나고 미움 받던 저였는데 이 학교에 와서 표창장도 받고, 선생님들도 챙겨주고 예뻐해 주니까 성적도 저절로 오르게 되고, 마음가짐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에 마음을 붙이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됐다. 부적응을 경험했던 일반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삶의 목표나 장래희망이 없었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는 225명(51.3%)이었지만, 성지고에 다니면서는 157명(35.8%)으로 줄었다.
한 성지고 학생은 “선생님들이 공부 못한다고 차별하는 것 없이 모두에게 다 똑같이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교육받을 권리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우한솔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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