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3년 넘는 준비 끝에 올 10월 말 선보일 새 고급 승용차 이름을 ‘아슬란’(사자의 터키어)으로 결정했다고 24일 발표했습니다. 아슬란은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던 ‘나니아 연대기’에서 숲의 왕으로 등장해 주인공들과 힘을 합쳐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역할을 맡은 사자로 낯익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차가 지금껏 내놓은 자동차 이름을 떠올려보면 아슬란이란 선택은 좀 의외입니다. 현대차는 쏘나타(악기로 연주하다), 아반떼(앞으로, 전방에), 그렌져(웅장, 위대함), 제네시스(본질, 기원) 등 승용차는 추상어로, 싼타페, 투산, 모하비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는 지명을 써왔습니다. 또 i30, i40 등 알파벳과 숫자 조합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는 동물이름을 넣은 차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제너럴모터스(GM) 쉐보레의 임팔라(영양), 포드 머스탱(작은 야생마) 등을 빼고는 오랫동안 사랑 받는 동물이름의 차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징크스를 무릅쓰고 현대차가 새로 내놓는 차 이름을 사자로 정한 까닭은 새 차의 콘셉트 때문입니다. 아슬란은 현대차가 최근 국내 시장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독일 디젤차들에 맞서 안방 시장 지키기를 위해 내놓았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독일 디젤차들은 조금은 딱딱하지만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다이내믹 드라이빙(Dynamic Driving)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여성 중장년층 운전자 중 상당수는 이를 낯설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이들을 집중 공략하기 위해 정숙성과 편안함을 강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디자인팀, 기술팀 모두 개발 과정에서도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실내외 디자인을 고민했고 소음을 막는 부품, 소재를 더 많이 넣는 동시에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최대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 관계자는 “사자는 어슬렁어슬렁 하다가도 쏜살같이 달려가 먹잇감을 잡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며 “사자처럼 평소에는 편안하고 차분한 느낌으로 운전하다가도 속도를 높여야 할 때는 확실하게 달릴 수 있는 양면성을 지향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기존 자동차 이름들이 ‘세련됨과 미래 지향성’을 강조하다 보니 다소 어려웠다는 반응을 감안해 누구나 쉽게 접하고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대신 영어 ‘라이온(Lion)’은 다른 기업이 연상되는데다 너무 흔한 듯 보여 터키어를 골랐다고 하는데요.
갈수록 독일 수입차들 라인업이 다양해 지는 것에 맞서 그렌저와 제네시스의 중간 등급(4,000만원 대) 신차를 내세워 고급 승용차 라인업을 다양화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자는 전략도 깔려 있습니다.
‘포니(조랑말)’로 자동차 시장 첫 발을 내디뎠던 현대차가 사자를 내세워 독일 수입차의 예봉을 꺾을 수 있을 지, 올 겨울 소비자들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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