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중앙지검은 한 고위공직자의 뇌물수수 혐의를 포착했으나, 액수가 적고 진술 외에 입증이 어렵다고 무혐의 처분했다. 공여자는 1,000만원 가량을 줬다고 하는데 돈을 인출한 시점과, 돈을 준 시점이 정확히 연결이 안 되고 500만원 정도만 어느 정도 혐의가 인정됐는데 액수가 적어 기소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요새는 진술만으로 기소하면 무조건 무죄”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수수사 위축의 주요 원인으로 까다로워진 법원을 꼽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명숙 전 국무총리,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과 저축은행 비리 관련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선고가 나왔다. 모두 “신빙성이 떨어지는 뇌물 공여자의 진술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혐의를 뒷받침해 줄 추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과거에는 법관이 검찰이 넘긴 수사기록을 읽고 난 뒤 재판을 시작해 피고인의 범죄 혐의에 대한 예단을 갖기가 쉬웠다. 하지만 법원이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증거 능력에 대해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면서 검찰은 일일이 법정에서 쟁점 사항을 놓고 변호인측과 다퉈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검찰 진술 조서에 대해서도 법원이 쉽게 증거 능력을 부여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특수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가령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10년 무죄를 받은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경우, 법원은 “박 전 회장이 돈을 줬다는 당시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어 증거로서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박 회장의 검찰 진술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검찰에선 “이쪽에선 공여자 진술이 부족하다고 무죄를 내리고, 저쪽에선 너무 구체적이라고 무죄를 내리니 어느 가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법원이 뇌물사건에서 살인사건에 준하는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수부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재경지법 부패전담 형사합의부의 한 부장판사는 “과거 특수수사는 증거목록과 공소장만 봐도 (형량과 유무죄 여부 등) 답이 딱 나왔다”며 “그러나 최근 특수부 수사 기록을 보면 공여자 진술 외엔 핵심이 없고 중언부언 설명만 많은 등 자신감과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 역력하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법원이 까다로워졌다고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실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