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석유산업 내리막
높은 가격ㆍ세금 부담으로 셰일에 밀려 경쟁력 점차 잃어
마이너스 성장ㆍ인구 유출 타격
석유 붐 이는 노스다코타
셰일 유정 180개...계속 증가세, 인구 늘고 성장율 9.7% 달해
"셰일이 가져올 세계변화 축소판"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면적은 가장 넓지만 인구는 제일 적은 주. 북아메리카 대륙 북서쪽 끝에 위치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1800년대 후반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사들일 때만 해도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 하지만 금과 원유, 천연가스 등이 다량으로 매장된 게 확인되면서 1940~1980년대 400%가 넘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율을 보이며 중동 원유에 맞서 미국의 자존심을 지키는 원유생산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난해 알래스카의 경제성장률은 미국 전체 주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너스(-2.3%)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그쳤다. 셰일에너지 붐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알래스카의 식어버린 유전
해안 저지대로 알래스카 원유산업의 핵심지역인 노스슬로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양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올해만 해도 알래스카의 가장 큰 정제공장이 5월 결국 문을 닫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알래스카 노스슬로프 지역의 군데군데 비어있는 지하관로들이 작동을 멈출 위기에 놓였다”며 “알래스카에서 활동하는 원유업자들의 꿈인 북극 석유 시추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에너지국에 따르면 2012년 미국 내 알래스카의 원유 생산량은 약 2억 배럴로 텍사스와 노스다코타, 캘리포니아에 이어 네 번째에 머물렀다. 이는 알래스카의 석유 생산량이 정점이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75% 가량 감소한 수준으로, 지난해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미국 원유산업의 지존을 지켜온 알래스카가 수년 전부터 급격히 무너진 데는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등 셰일에너지 붐으로 대변되는 외부요인과 알래스카 내 원유산업에 대한 세금인상 등 내부요인이 작용했다.
전통적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했던 알래스카 원유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스다코타와 텍사스, 캐나다의 셰일에너지에 밀려 점점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다. 노스다코타에서 생산되는 셰일석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선이지만 알래스카 석유는 배럴당 104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WSJ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는 미국 사회에서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은 더 비싼 알래스카산 석유의 구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설사가상으로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2007년 인상한 석유세는 원유업체들의 시추 계획을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숀 파넬 현 알래스카 주지사 등이 지난해 석유세 감세 등을 내세우며 지역 경제를 위한 에너지 관련 산업 활성화에 나섰다. 업체들도 석유세 감세 등을 반기며 축소했던 시추 계획 등을 다시 내놓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알래스카의 새로 발견된 석유 시추지역에서 석유를 생산해내고 이익을 내는 데는 수 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가장 핫한 ‘노스다코타’
반면 노스다코타는 2012년 텍사스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생산지에 이름을 올렸다. 1980년대 알래스카에 석유 붐이 일었을 때부터 수십 년간 원유 시추업을 해온 리처드 레퍼(60)씨도 지난 해 가을 알래스카에서 무려 3200km 떨어진 미국 중서부 북쪽에 위치한 노스다코타주의 바켄지역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레퍼씨와 같은 원유사업 종사자들은 미국의 원유사업 미래를 더 이상 알래스카가 아닌 셰일석유 사업이 활발한 노스다코타에서 찾고 있다. 노스다코타의 대표적 셰일석유 생산지인 바켄유전지대 인근 윌스턴 등에는 이주 근로자를 위한 임시가옥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있다. 노스다코타에는 셰일석유 채취를 위한 유정이 180개 넘게 있으며 계속 증가 추세다. 노스다코타의 4월 산유량은 전월 대비 2.5%가 증가하며 사상 최초로 1일 생산 100만 배럴을 넘어섰다. 마크 페리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인류 역사상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생산한 지역은 고작 10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알래스카의 인구는 2012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반면 노스다코타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72만 명으로 2010년 이후 7.6% 늘었다. 셰일에너지 투자 붐이 일면서 이주 근로자 등의 유입으로 50개 주 가운데 가장 빠른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WSJ는 이를 19세기 금광을 찾아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든 ‘골드러시’에 빗대어 ‘블랙골드 러시’라 표현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노스다코타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9.7%다. 3년 연속 50개 주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2012년에는 13.4%의 성장률을 보이기도 했다. 노스다코다와 같이 원유산업을 주종목으로 하지만 마이너스를 기록한 알래스카의 지난해 경제성장률과 비교하면 그 체감은 더 커진다.
노스다코다의 소득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 경제분석국(BEA) 발표에 따르면 2012년 노스다코타의 1인당 평균소득은 5만4900달러로 50개주 가운데 4위였다. 동부의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뉴저지 등 전통적으로 부유한 지역 다음으로 많은 소득을 기록했다. 노스다코다의 올해 6월 실업률은 2.6%로 미국에서 가장 낮다. 같은 기간 알래스카의 실업률은 미국 전체 실업률(6.1%)보다 높은 6.4%를 기록했다. WSJ는 “알래스카가 원유 생산량 감소와 더불어 거주자들마저 생계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뺏기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채널 CNBC는 “알래스카의 쇠락과 노스다코타의 부각은 단순히 미국 내 부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셰일에너지가 가져올 전 세계 경제변화의 축소판”이라고 전했다. CNB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원유수출 대국들이 전 세계 경제에 현재와 같은 영향력을 언제까지 행사하게 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경균 인턴기자(서울시립대 영어영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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