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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반면교사 대통령

입력
2014.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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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담 풍(風)’ 해도 내 새끼는 ‘바람 풍’ 해주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다. “다 너 잘 되라”는 소리이건만, ‘듣는 너’의 귀에는 매양 뻔한 잔소리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숱한 시행착오 끝에 체득한 효과만점 화법 가운데 하나가 반면교사(反面敎師) 활용법이다. 부부싸움에선 절대 인정 않던 내 허물부터 가까운 사람들의 이해 못할 언행, 유명 인사들의 황당한 스캔들까지,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머잖아 성인이 될 딸아이와의 대화에 요즘 부쩍 자주 오르는 이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 아이가 사회인으로 꼭 갖추길 바라는 덕목으로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성찰(省察) 능력을 첫 손에 꼽는다. 관계를 그르치는 숱한 오해들, 서로를 지치게 하는 소모적 갈등의 많은 부분이 그런 능력의 결여에서 빚어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의 언행은 자신의 책임은 슬쩍 감춘 채 누군가를 호되게 꾸짖는 데, 마땅한 해법에 대한 고민도 없이 왜 빨리들 해결을 못하느냐 닦달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사라진 7시간’의 진실은 제쳐 두더라도,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묻고 싶은 ‘유체이탈’ 화법만은 이제 그만 좀 듣고 싶다.

▦ 다음은 소통 능력이다. 낳아준 부모도 헤아리기 힘든 제 속내를 남들이 알아주기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 결국 사회적 평판을 결정짓는 것은 스스로의 말,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는 바윗돌도 움직이지만, 그럴싸한 허언을 되풀이하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 “언제든 찾아오라,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은 한번 만나자는 유족들의 간절한 청에 야멸차게도 묵묵부답이다. 우리가 밥 먹듯 하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처럼 의례적인 인사였을지 모르지만, 그 빈 말이 진짜 밥 한끼가 절실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비수가 되어 꽂힌다.

▦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22일 병원에 실려갔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달라며, 진상조사위에 수사ㆍ기소권을 부여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며 곡기를 끊은 지 40일 만이다. 의료진이 수액 투여 등 치료에 나섰으나, 단식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내 아이가 절대 잊지 않기 바라는 단 하나를 꼽자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을 방문, 건어물을 고르며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 오른쪽은 김종진 자갈치시장 상인대표.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을 방문, 건어물을 고르며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 오른쪽은 김종진 자갈치시장 상인대표.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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