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 다케시 지음ㆍ정수윤 옮김
정은문고ㆍ248쪽ㆍ1만3,000원
장서가들(저자 추측으로 수집가의 99%가 남자다)은 안다. 무한증식 하듯 늘어나는 책이 집에 쌓여가는 모습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발 디딜 틈 없이 책으로 가득 찬 집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고 상상하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에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책 3만 여권을 보유한 서평가 오카자키 다케시가 세상의 모든 장서가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서재는 안녕하십니까?”
‘장서의 괴로움’은 저자가 장서의 괴로움에 지친 나머지 건전한 서재 만들기를 위해 처절한 싸움을 한 뒤 얻은 교훈의 기록이다. 오카자키는 아무리 장서가라도 책이 5,000권 정도여야 정리의 기술이 유용하며 2만권 가까이 가면 공간이 충분한 집이 아니고서야 정리고 뭐고 할 처지가 못 된다고 말한다.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되는 걸 막기 위해선 “책을 버리거나 팔아서 양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서가에게 전하는 열네 가지 교훈 중 핵심이 여기 있다. 현재 자신에게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아야 한다는 것. 저자 역시 젊었을 때부터 헌책방을 돌며 한 권 한 권 사 모은 책들을 헐값에 처분하는 기분이 “제 손으로 키운 송아지를 떠나 보내는 낙농가의 심정”이요, “많은 양의 피가 철철 흐르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한도 끝도 없이 책을 쌓아두는 일이 “비틀어진 욕망”에 불과하다고 그는 냉정하게 꼬집는다.
저자에 따르면 책장은 서재를 타락시킬 뿐이니 필요한 책을 손에 닿는 곳 가까이에 둘 수 없다면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한다고, 전자서적으로 갈아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서재를 홀쭉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저자는 두 가지를 추천한다. 헌책방에 파는 것 그리고 직접 ‘1인 헌책시장’을 여는 것. 오카자키는 후자를 추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적당한 장서량은 500권 안팎이다. 병든 수집가가 아닌 건전한 독서가가 되어야 가능한 수치다. 그런 이유로 열 번째 교훈이 가장 인상적이다. ‘진정한 독서가는 서너 번 다시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많이 가진 사람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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