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보울러 지음ㆍ양혜진 옮김
놀 발행ㆍ284쪽ㆍ1만2,800원
불륜 엄마ㆍ폭력 아빠 둔 왕따소년, 가족 갈등ㆍ화해를 범죄서사와 엮어
베스트셀러 청소년소설 작가 보울러, "세월호 큰 충격...이 책이 위로 되길"
팀 보울러(62)의 장편소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는 ‘나이트 러너(Night Runner)’가 원제다. 작가의 양해 여부와 관계 없이 소설의 제목을 바꾸는 번역은 폭력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절묘한 데가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가진 재능이라고는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것 하나뿐인 빈민층 소년이 후두두둑 눈물을 떨구며 죽어라 달리는 장면이 꽤 오래도록 망막에 남기 때문이다. 보울러는 1997년 ‘리버보이’로 ‘해리 포터’를 제치고 영국 최고의 아동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카네기 메달을 거머쥔 청소년소설 작가로, 그의 대표작이 된 ‘리버보이’는 한국에서만 40만부 넘게 팔렸다.
새 소설은 작가 자신이 “전력 질주하듯 썼다”고 밝힌 것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15세 소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지니’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총체적으로 외롭다. 청소부인 어머니는 청소업체 사장과 바람이 났고, 택배 기사인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며 아동학대를 일삼는다. 월세가 잔뜩 밀린 집안에는 말라빠진 사과 몇 알 말곤 먹을 것도 없다. 게다가 학교에 가면 나이도 두 살이나 많고 덩치도 훨씬 큰 스핑크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게 일인, 친구 하나 없는 왕따 신세. 작년까지만 해도 달리기 재능을 살려 훈련에 열심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그만뒀다. 꿈과 미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외로움의 가장 큰 원인일 터. 그래서 그는 날마다 학교를 땡땡이 친다. 2년 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와 반납하지 않은 풍경사진집만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일 뿐이다.
작가는 해체 직전의 하층민 가족이 범죄사건에 연루되는 스릴러의 서사를 지니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마음의 행로와 결박해 이야기의 추진력을 마련한다. 첫 장면부터 급박하다. 몰래 학교를 빠져 나와 집으로 들어간 지니가 뭔가를 찾으려는 듯 집안을 뒤집어놓은 갱스터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시작. 지니가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동안 엄마와 그 애인이 들이닥치고 갱스터들의 미행과 감시, 엄마의 피격과 갱들의 협박 등 이야기가 한달음에 돌진해 나간다. 엄마와 아빠를 살리고 싶다면, 갱들이 주는 꾸러미를 밤새 달려 수취인에게 배달해야 하는 것, 그것이 지니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다. “당신들은 나한테 사랑받을 자격도 없어!”라고 부모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지만 “이 말이 진심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그래서 소년은 달리고 또 달린다.
소설이 시종 위태로운 가운데 애잔한 낙천의 기미를 잃지 않는 것은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 덕분이다. 소설 속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편없는 인물들로 그려지지만, 오로지 부정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어떤 인물이 부정적인 것은 그가 부정적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부정적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애증이라는 상반된 감정의 융합상태는 이 소설의 시공간에서 역동적으로 운동한다. 지니는 아버지, 어머니와 내내 맞서고 불화하지만 그 불화는 소통의 한 형식이기도 하다. 종종 이죽거리는 농담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애정의 찌끼들은 서로의 마음을 눈치채고 짐작하게 하는 해석의 단초들로, 범죄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과하며 화해의 강력한 에너지원이 된다.
팀 보울러는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에 “세월호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며 “이 책이 슬픔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되기를 빈다”고 적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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