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안과에서 황반변성 판정을 받은 김혜정(77) 할머니는 이달 초 정기 검사를 받으러 대학병원 안과를 찾았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달까지 20만원만 내면 황반변성 치료 주사를 맞았는데 법이 바뀌었다며 100만원 내고 맞으라고 했기 때문.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항의해도 소용 없었다.
황반변성은 당뇨병성 망막증, 녹내장과 함께 3대 실명질환 중 하나다. 50세 이상 노년층에서 주로 발생해 ‘나이관련 황반변성(AMD)'이라 부른다. 황반변성으로 시력장애가 생기면 회복이 어려워 시력저하 속도를 늦추고 병변을 안정시키는 추가 치료가 필요한데 안과에서는 황반변성 전문 치료제인 ‘루센티스’와 항암치료제이지만 황반변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아바스틴’을 환자에게 투여하고 있다.
안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황반변성 환자들은 전문 치료제인 루센티스로 치료를 시작했다가 주사 횟수가 10회가 넘으면 아바스틴으로 대체한다. 사실상 완치가 힘들어 주사를 계속 맞아야 하는데 루센티스는 비급여일 경우 100만~120만원의 비용이 든다. 1인 1회에 한정돼 있는 루센티스와 달리 아바스틴은 극소량만 투입하면 돼 여러 환자가 나눠 맞을 수 있어 비용도 20만원 선이다. 쉽게 말하면 환자가 ‘n분의 1’로 계산하는 셈이다.
김 할머니가 병원에서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은 지난달 3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치료제로 사용하지 말라고 해당 대학병원 안과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올 3월 항암제로 보험급여에 등재된 아바스틴이 항암제가 아닌 황반변성 치료제로 사용하려면 ‘허가초과 승인’이 필요한데 전문치료제인 루센티스가 있어 불허한 셈이다.
하루아침에 6배에 이르는 비용을 치르고 치료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원성이 들끓자 세브란스병원과 김안과, 누네안과병원 등은 심평원에 아바스틴을 기존처럼 황반변성 치료제로 사용하겠다며 허가초과승인 신청을 냈다. 심평원은 지난 14일 이들 병원에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치료제로 사용해도 된다는 공문을 송부했다.
14일 만에 결정을 번복한 심평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탓을 한다. 아바스틴 허가초과 사용 승인 업무는 식약처 소관이며 심평원은 식약처가 결정한 것을 해당 병원에 통보했을 뿐이라 주장한다. 식약처는 보험등재 약제 관련 업무는 심평원 고유 업무로 식약처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자체가 불쾌하다고 한다.
경제적 부담으로 제때 치료 받지 못해 실명하는 황반변성 환자가 적지 않다. 미국 등에서는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치료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14일 만에 빨리 조치했다”는 심평원 관계자의 주장에 환자들은 “당신이 당했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나”고 분노를 토할 것 같다.
김치중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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