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 일하다 백혈병 얻은 故 황유미·이숙영씨 산재 인정
나머지 3명은 1심과 같이 패소, 반올림 측 "끝까지 싸우겠다"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ㆍ이숙영씨에 대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서울고법 행정9부(부장 이종석)는 21일 황씨와 이씨 유족 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함께 소송을 냈던 송창호씨와 김은경씨, 고 황웅민씨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송씨와 김씨는 현재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아 투병 중이다.
재판부는 “고인 황씨와 이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습식식각 공정 등에 근무하면서 벤젠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개연성이 있고, 이로 인해 백혈병이 발병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습식식각은 화학물질을 사용해 반도체 웨이퍼의 불필요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반면 “김씨와 송씨 등은 반도체 사업장에 근무하면서 유해물질 일부에 노출됐을 가능성은 있으나 이로 인해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2003년 10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황씨는 이듬해 12월부터 기흥 사업장 3라인에서 습식식각 공정업무에 배치됐다. 황씨는 그로부터 7개월 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며 2007년 3월 사망했다. 황씨의 죽음은 올해 초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했다.
1995년 입사한 이씨는 2005년 5개월 가량 습식식각 공정업무에 배치됐다가 출산휴가를 마친 후 복귀한 2006년 7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며 1개월 여 뒤 숨졌다. 이후 황씨의 부친 등은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산재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소송을 냈고 2011년 6월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에 대해 최초로 산재를 인정했다.
법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유족들과 삼성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는 “삼성의 책임이 인정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면서도 “패소한 나머지 노동자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황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항소심에서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기쁘지만 패소한 3명도 똑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분들인데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올림 변호를 맡은 임지운 변호사는 “산재 피해자 5명 중 2명만 승소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피해 입증 책임은 근로자에게 있는데 회사 측의 정보가 제대로 다 공개되지 않은데다 반도체 공정은 특히 복잡해 입증 여부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유족 모두가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유해화학물질과 발병의 인과관계가 확인됐다”며 “근로복지공단은 더 이상 비슷한 불행을 만들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올림은 이번 판결이 비슷한 소송을 진행하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22일 예정된 고 김경미씨의 항소심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고 황유미씨와 삼성전자에서 같은 일을 했던 김 씨는 2013년 10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1심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교착 상태에 빠진 삼성전자와 산재 피해자들의 교섭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올림에 공식 사과하면서 교섭 물꼬가 트인 이후 삼성의 피해자 보상 방안을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였던 산재 피해자 8명은 이날 모임을 갖고 다음달 3일 열릴 7차 교섭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 삼성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회사는 이미 아픔을 겪은 가족에 대한 사과, 보상, 예방노력을 약속한 만큼 협상을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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