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49) 경기도지사가 고개를 숙였다. 정치인으로서 탄탄대로로 보였던 앞날에 '가정사'라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군에 보낸 두 아들 중 장남(23)은 후임병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한창 조사를 받고 있고, 열흘 전 부인과 합의 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선 후 파격적인 정치 행보로 눈길을 끌어 모았지만 개인사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남 지사는 아들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민심은 냉랭하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남 지사의 지난 100일을 되돌아 봤다.
피 말리는 접전… 달콤한 승리
5월 10일. 남 지사는 새누리당의 경기지사 후보로 선출됐다. 남 지사는 여권의 기대주다. 1996년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후 5선의 중진의원까지. 늘 여권의 개혁을 이끌어낼 '소장파'를 대표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를 이끌 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1,250만 경기도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남 지사를 내세웠다.
5월 11일~6월4일. 남 지사와 맞붙을 상대로 새정치연합은 김진표 전 의원을 후보로 선출했다. 두 후보는 공통점이 많았다. 경복고등학교 선후배이자 수원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신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스펙트럼도 흥미롭다. 남 지사가 '보수 정당의 개혁 성향 후보'라면 김 전 의원은 '개혁 정당의 보수 성향 후보'. 남 지사는 1순위 공약으로 '현장 중심의 경기도형 재난 안전시스템 생명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내세웠고, 김 전 의원은 '2,000억 청년 일자리펀드 조성'으로 일자리 늘리기에 나서겠다고 했다.
남 지사와 김 전 의원의 대결은 피를 말리는 접전이었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결과는 남 지사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두 후보의 지지율은 근소한 차이로 좁혀지거나 (▶ 기사보기) 때로는 김 전 의원이 앞서기도 했다. (▶ 기사보기)
6월 5일, 남 지사가 김 전 의원을 상대로 0.8%p 차 신승을 거뒀다. 불과 4만여표 차다. 개표에 앞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선 김 후보에게 2%p 뒤지는 것으로 나와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남 지사를 향했다. 당선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남 지사는 "승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통합·현장·혁신 등 3박자를 갖춘 도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기사보기)
파격 또 파격… 연정추진에 이목집중
6월 5일~6월 30일. 남 지사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제왕적'이라는 비난을 샀던 인수위원회 대신 '혁신위원회'를 꾸려 도정 인수절차를 밟았다. 눈길을 끄는 건 '연정(聯政)' 추진. 남 지사는 "정무부지사 직을 '사회통합부지사'로 명칭을 변경하고 야당에 추천권을 넘기겠다"면서 "여야간 협치와 독일식 연정을 경기도에서 시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기사보기)
7월 1일, 남 지사는 공식 취임식을 생략했다. 대신 진보 성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안산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를 분향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났다. 자신이 첫 번째로 내건 공약이 '현장 중심의 경기도형 재난안전시스템 생명안전망 구축'이었던 만큼, 경기도 재난종합지휘센터를 찾아 현장 안전 점검을 했다. (▶ 기사보기)
남 지사는 '혁신'을 강조하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경차 '모닝'을 구입해 직접 몰고 경기도청으로 출근했고 관용차도 체어맨(구입비 7,050만원)에서 카니발(구입비 3,920만원)로 교체했다.
'소통' 이미지 굳히기에도 나섰다. 남 지사는 첫 월례조회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소매를 걷고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공무원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스트레칭'을 했다. 집무실 문도 열었다. 도지사 공관을 게스트하우스로 고쳐 시민에게 개방한다고 알렸다. (▶ 기사보기)
정치혁신 첫 단추… 미래주자로 발돋움
8월 5일, 남 지사의 '새 정치 실험'이 첫 발을 디뎠다.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경기연정 정책협의회)’ 는 여야가 합의한 20개 사항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남 지사의 공약과 관련된 마을 공동체 복원과 광역 교통 대책뿐 아니라 고위 공무원 인사 청문회 도입, 친환경 무상 급식 제도화 등 새정치연합의 요구 사항도 상당수 반영됐다. (▶ 기사보기)
남 지사가 추구하는 연정은 '독일식 모델'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보수진영인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을 이끌면서도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과의 정책연대를 기반으로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한 사례를 참고했다.
파격적인 정치 실험에 칭찬이 자자했다. 5선 국회의원의 정치 경력을 갖춘데다가 수도권 광역단체장까지 당선되면서 행정 경험까지 두루 갖추게 됐으니 미래의 차기 대선주자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판도 나왔다. 단순히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얘기다.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남 지사는 CBS라디오 에서 이렇게 답했다.
"이제 첫걸음을 뗐다. 연정 추진 과정에서 느낀 것은 여야가 서로 적이 아니고 서로 도민들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드려야 되는 의무를 가진 어떻게 보면 동반자라는 점이다. 선거 때는 싸우지만 선거 끝나고 나서는 그 목표를 함께해야 될 같은 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은 있겠지만 저는 결국은 잘 될 거라고 믿는다." (▶ 인터뷰 원문보기)
고개 숙인 南… 공든탑 무너지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부덕은 곧 부모의 책임으로 여겨진다. 정치권에서는 종종 자녀의 말썽으로 눈물 흘리는 부모들이 나오곤 하는데, 공직자로서 손색없는 스펙을 쌓아온 남 지사의 이력에 흠이 생겼다.
8월17일, 남 지사의 장남인 남모(23) 상병이 강원 철원군 6사단 예하부대에서 후임병을 때리고 성추행한 정황이 드러나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남 지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남 지사는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모든 것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잘못"이라고 말했다. (▶ 기사보기)
민심은 냉랭했다. 윤 일병 사망사건 이후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은 늘 불안했다. 그런데 구타 가해 혐의를 받는 병사가 정치지도자의 아들이라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남 지사의 부적절한 처신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남 지사는 15일자 에 기고한 글에서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둘째 아들이)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자식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의 심정도 같을 것"이라고 적었다. (▶ 기사보기)
남 지사는 13일에 장남이 헌병대에 입건된 사실을 통보 받았다. 장남의 입건 사실을 알고도 기고문을 게재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남 지사가 15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도 문제가 됐다. (▶ 기사보기) 민간단체인 군 인권센터는 "군 당국이 남 상병 관련 사건을 은폐하고 봐주기 식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의혹도 제기했다. (▶ 기사보기)
남 지사가 부인과 갈라선 사실도 알려졌다. 남 지사는 지난달 말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조정을 신청했고, 지난 11일 이혼에 합의했다. 위자료나 재산분할 청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한 켠에서는 지방선거 당시 남 지사의 부인이 선거운동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화설이 돌았다는 얘기도 있다. (▶ 기사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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