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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것

입력
2014.08.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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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시작된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더딘 발걸음도 무색하게 하마스의 폭격을 빌미로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초부터 무차별 폭격을 퍼붓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와 함께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무기인 백린탄을 가자지구 상공에서 떨어뜨리고 있다. 살갗에 닿으면 타들어 가는 백린탄은 살과 뼛속을 파고드는 무기다. 닿은 부분을 도려내지 않고는 사실상 끌 도리가 없다.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폭력 가운데 가장 잔인하며 일방적인 이 범죄에 개인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큼 이스라엘의 헤게모니는 강력하다.

사태가 악화되기 전인 올해 1월 스칼렛 요한슨은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홍보대사를 그만뒀다. 요한슨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에 공장이 있는 소다스트림사 광고 모델로 발탁되자 이스라엘 보이콧을 지지하는 옥스팜이 문제를 삼았다. 이에 요한슨은 옥스팜과 의견이 다르다며 홍보대사직을 사퇴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 부부 등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대학살이라고 말하며 유럽연합에 즉각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자 할리우드를 좌지우지 하는 유대인들이 이들의 퇴출을 운운하며 들고 나섰다. 스스로 목 매달아 자살하라는 폭언까지 나왔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의 말이다.

보편적 인권을 호소하는 윤리적 입장을 취하는 일 자체가 또 다른 위협과 폭력에 맞서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이 와중에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한 유대인이 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2008년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만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활동을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더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서안지구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스페인 정부가 발행한 외교관 여권을 이용한 터였다. 스페인, 이스라엘, 아르헨티나 여권에 팔레스타인 여권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었지만, 사이드와의 우정, 약자에 대한 연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약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일보다 더 힘들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은 강자의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판하는 것과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무릅써야 할 위협이 다르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의회에서 거행된 울프상 시상식에서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을 거론하며 정부를 비판한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나아가 바렌보임은 이스라엘의 암묵적인 금기를 깨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연주되지 않는 것이 비공식적인 약속이다. 나치가 바그너 음악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동원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악의 폭력의 희생자가 그에 버금가는 폭력의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일깨우는데 홀로코스트를 언급하는 일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바렌보임은 2001년 이스라엘 국립음악 축제에 바그너를 연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주최측의 요구로 취소한 바 있다. 연주 당일 예루살렘 국제 컨벤션홀에서 바렌보임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예정된 연주를 마쳤다. 문제는 두번째 앙코르에서 터졌다. 바렌보임이 객석을 상대로 바그너를 연주해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공연장은 들썩였고, 30분간 논쟁이 이어진다. “수용소 음악”이라는 고성이 오가며 일부가 자리를 떠났다. 결국 바렌보임과 오케스트라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했다. 자신들에게 불편한 음악 하나 연주되는 것조차 금기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는 셈이다.

미국을 손에 쥔 이스라엘과 맞서는 일은 아마도 가장 지난한 일일 것이다. 바렌보임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노력이 당장 팔레스타인 하늘의 백린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항하기 위해 자발적 망명을 선택한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를 구하는 길밖에는 없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더 필요한 때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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