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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친 뇌

입력
2014.08.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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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친 뇌

1996년 영화배우 휴 그랜트가 심야에 미국 LA 주택가 도로변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세워놓고 흑인 여성 매춘부와 일을 벌이다 단속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으로 이미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올랐고, 매력적인 외모와 부드러운 이미지로 세계 여성들 마음을 사로잡은 로맨틱 히어로였다. 미모의 유명 모델과 열애 중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벌인 어처구니 없는 추태는 연예기자들이 할리우드 사상 최대 스캔들이라고 꼽을 만큼 파문이 컸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 시절 성적 일탈도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10차례나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실이 특별검사의 조사로 드러났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멀쩡하고 정상적인 저명 인사들이 왜 어처구니 없는 일탈행위를 하는 걸까. 2006년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사이 출판사, 데이비드 와이너ㆍ길버트 헤프터 공저, 김경숙ㆍ민승남 역)는 그 이유를 심리학과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한다.

▦ 저자들은 인간 내부에 충동적이고 원시적인 본능의 덩어리가 있다고 파악한다. 프로이드가 말한 이드와 같은 이 본능이 어떤 순간에 쾌(快)와 불쾌(不快)의 원칙만을 따라 이성을 제압하고 어리석고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그 원흉을 ‘이너 더미(Inner Dummy)’라고 부른다. 우리 뇌 속 감정과 기분, 충동 등의 관할 영역인 변연계에 터를 잡고 준동하는 ‘악마’다. 이게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권력 욕구’ ‘영역 욕구’ ‘성 욕구’ ‘애착 욕구’ ‘생존 욕구’ 중 어떤 게 충족되지 않았을 때 사단을 일으킨다.

▦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심야 대로변 음란행위 소동도 이 책 저자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이너 더미 소행으로 보인다. CCTV 등의 증거들은 변명하는 그를 한층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병영에서 횡행하는 잔학행위들에서도 이너 더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저자들은 그런 일탈도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다며 눈에 보이는 몸의 상처처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럼에도 문명과 이성과 교양의 울타리를 간단하게 뛰어넘어 소동을 일으키는 이너 더미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다는 사실에 우울하기만 하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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