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에서 의류소매업을 하는 A(44ㆍ여)씨는 이달과 지난달 초 은행에 가서 27만원을 주고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 30만원 어치를 샀다. 그리곤 바로 상가번영회에 가서 환전해 30만원을 돌려받았다. 잠깐의 발품으로 3만원이 생긴 것이다. A씨는 “상품권 구입한도가 1인당 월 1회 30만원으로 제한돼 있지만 남편 등 식구를 동원하면 꽤 짭짤하다”고 말했다. 서문시장서 도매상을 하는 B(52)씨도 “10%의 환전 차액이 보장되는 온누리상품권 구매 권유를 받고 마음이 흔들렸다”며 “시장 상인 중에서 두 집 건너 한 집은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돈을 챙겼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을 싼 값에 사서 제 값을 받고 현금화하는 속칭 ‘상품권 깡’이 대형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 등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기 위해 6월 초부터 당초 5%였던 온누리상품권 현금구매 할인율을 10%로 확대, 편법 환전 수입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 3대 재래시장으로 손꼽히는 대구 서문시장의 경우 8개 지구에 총 4,622개나 되는 점포가 있는데다, 이중 77%인 3,580개 점포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에 등록하지 않는 등 상인들의 익명성이 보장돼 편법 환전이 더욱 활개를 치며 상품권 깡의 온상이 되고 있다.
19일 소상공인진흥공단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 6,7월 전국 온누리상품권 판매실적은 628억9,232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9억9,703만원에 비해 5.2배 정도 늘어났다. 이 기간 중 대구지역 판매실적을 보면 올해 85억2,743만원으로 지난해 6억5,750만원보다 12.9배로 성장, 전국 평균 성장규모의 두 배를 훌쩍 넘고 있다.
서문시장 인근의 대구 대동신협의 경우 매월 1억원의 온누리상품권을 파는데 이달 판매 개시일인 1일 물량이 매진됐고, 대구은행 서문시장지점도 3일 만에 동났다. 은행 관계자는 “지난달과 이달 1일에는 온누리상품권을 사려는 행렬이 은행 밖까지 이어져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며 “은행에선 상품권 가맹점주만 가려낼 수 있을 뿐 누가 상인인지 일반인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문시장 내 상품권 회수율이 높은 동산상가와 4지구의 경우 현금보유량이 달려 상품권 환전금액에 제한까지 두는 지경이다. 동산상가는 하루 총 2,000만원에 점포당 30만원으로, 4지구는 하루 총 600만원에 점포당 10만원으로 정해놓았다.
동산지구 박재홍(48) 상가연합회장은 “상가 위치와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하루 30만원의 상품권을 받기 어려운 일부 미가맹점이 계속 한도에 가깝게 환전하길래 경고 조치했다”며 “건달들이 시장 바깥에 상품권교환소까지 차려놓는 경우도 적발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성이 보장된 서문시장과 달리 규모가 작은 대구 동구시장과 불로, 서부, 동서, 방촌, 중리시장 등 지역 재래시장의 경우 가게 수가 많지 않아 편법 상품권 환전이 활개치진 못하고 있다.
서문시장 관계자는 “서문시장뿐 아니라 대규모 재래시장에서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며 “상인들이 돈 몇 만원에 눈이 어두워 편법으로 깡을 일삼으면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은 물론, 재래시장에 대한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걱정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배유미기자 y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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