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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획일적인 군대, 더 이상 안 된다

입력
2014.08.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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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군대 하면 어두운 기억이 더 많다.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가 무용담처럼 나올 때마다 속으로 믿기 어려웠다. 정말 그랬을까. 세월에 풍화되면서 모든 게 아름답게 덧칠되는 일종의 착시 아닐까. 나와는 다른 군대 풍경이어서 제대 이후 군대 얘기를 꺼낸 적이 거의 없다.

교육병 시절 많이 맞았다. 고문관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는데도 야구방망이가 날아다녔고 주먹이 오갔다. 얼차려는 말이 그렇지 지금 생각하면 가혹행위나 다름 없었다. 속된 말로 대가리 박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밀대처럼 밀고 가다 중간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욕설과 함께 발길질이 튀어나왔다. 선임병이나 교관에게 얻어 맞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있다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교관 되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겠다던 부교관이 정작 교관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했던 모습도 생생하다. 제대 후에는 무수히 발길질 했던 그 교관을 찾아 복수하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하면서도 우연히 그 교관과 같은 이름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곤 했다.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가 폭행과 얼차려에서 해방될 즈음 가장 절친했던 고등학교ㆍ대학교 동창이 전방에서 의문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 나라가 한달 전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정신 없던 때여서 친구의 죽음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부검에서 갈비뼈가 대여섯개 부러지고 고막이 터져 있었다는 얘기를 부대 안에서 전해 듣고는 정말 많이 울었다. 제대 후 그 친구가 살던 영등포 사창가 옆 단칸방을 찾아 늙은 홀어머니와 두 동생에게 자장면을 사드렸던 게 내가 그 친구에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작별인사였다.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을 계기로 한국일보가 기획한 ‘군대, 적은 우리 안에 있다’ 시리즈를 보고 떠올린 기억들이다. 그 때는 30년 전이었다. 인권이니 개성이니 하는 건 안중에도 없었던, 온 나라가 폭력과 억압, 두려움에 짓눌려 살던 시절이었다. 나라 자체가 그랬으니 군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얻어맞고 깨져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민주화가 되고, 선진국 문턱까지 왔다는 지금 자식뻘 되는 젊은이들이 여전히 똑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구타, 가혹행위에다 장교들은 부하 병사를 머슴 부리듯 했고, 군 수뇌부는 필요악이라는 이유로 묵인하고 방치했다. 부당행위를 고발하라고 만든 소원수리는 내부고발을 한 병사를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일병 때는 부조리 없앤다고 했는데, 막상 자신이 상병 되니 옛날 선임하고 똑같이 하더라”라는 육군 일병의 증언은 30년 전 내가 봤던 부교관, 바로 그 짝이었다.

신문에 난 모습이 군대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훌륭하게 모범적으로 군생활을 하는 병사와 장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명령과 군기가 생명인 군대를 일반사회와 똑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한 명이 됐든 두 명이 됐든 일회성이 아닌 구조적인 일탈로 소중한 젊은이들이 내부의 적에 의해 희생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군대가 특수조직이라 해도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서는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군대의 인식 수준이다. 30년 전 군대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변한 지금 군대만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큰 문제다. 내 세대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을 과거의 틀에 묶어두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들의 어깨에 우리의 안보가 걸려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백가쟁명식 처방이 나온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군대 스스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모병제로의 전환을 논의할 때가 됐다. 재원과 병력충원 문제 등 난제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썩은 환부를 그냥 둘 수는 없다. 병력 재원이 부족해 병역 부적합자들도 대거 징집되고 이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징병제는 오래 가기 힘들다. 어떤 조직도 사회와 격리돼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황유석 여론독자부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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