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활성화 정책으로 세액공제 확대, 위험자산 운용한도도 대폭 늘어날 듯
지금껏 퇴직금은 그저 정해진 회사 규정에 따라 받는 것이었을 뿐, 딱히 재테크의 대상은 아니었다. 사내에 돈을 적립해두는 퇴직금 제도에서 탈피해 2005년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금을 맡겨 운용하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벌써 10년이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5곳 중 1곳도 채 되지 않고, 기껏 돈을 굴린다고 해도 은행 예ㆍ적금 등 원금보장형 상품 비율이 90%를 훨씬 넘었으니까.
하지만 정부의 퇴직연금 활성화 대책으로 이제 퇴직연금 재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가고 있다. 세액공제 한도는 크게 늘었고(400만원 →700만원), 위험자산 운용한도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퇴직연금 가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직장에 다니는 기간보다 은퇴 이후 삶이 더 길어진 요즘, 퇴직연금은 무엇보다 중요한 재테크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회사마다 또 유형별로 복잡한 구조가 장벽이다. 정교하고 꼼꼼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DB형이냐, DC형이냐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은 퇴직연금을 확정급여(DB)형으로 할지 확정기여(DC)형으로 할지 선택해야 한다. DB형은 퇴직할 때 받을 돈이 사전에 정해진다. 퇴직 직전 평균 3개월치 임금에 근속년수를 곱해서 퇴직금으로 준다. 회사가 퇴직하기 전까지 퇴직금을 관리한다. DC형은 개인이 직접 퇴직금을 운영한다. 회사가 근로자 개인의 명의로 된 DC계좌에 매년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이상을 넣어주면 근로자가 이 돈을 어디에 투자할 지 스스로 정한다. 수익률에 따라 퇴직금이 DB형보다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이번에 정부가 세액공제 한도를 늘려주면서 세제혜택을 받으려면 DC형은 갖고 있던 계좌에 300만원을 더 넣으면 되고, DB형은 개인계좌가 없기 때문에 별도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를 만들어서 돈을 불입해야 한다. 예컨대 저축연금보험이나 저축연금펀드 등 개인 연금을 연 400만원을 넣고 매년 48만원의 공제혜택을 받았던 직장인이라면 내년부터는 퇴직연금에 300만원을 더 넣으면 연말정산에서 84만원을 공제받는다.
선택기준은 임금인상률과 운용수익률
관건은 선택의 기준이다. DB형은 퇴직 직전 임금으로 정산하다 보니 임금인상률이 중요하다. 예컨대 임금이 100만원, 임금인상률이 매년 10%라면 3년 근속 시 직전 3개월 평균임금(121만원)에 근속년수(3년)을 곱해 363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임금인상률이 5%로 떨어지면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이 115만원이고, 퇴직연금은 345만원으로 줄어든다. 동일한 조건(임금 100만원, 임금인상률 연 10%)에서 DC형은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씩 3년(100만원+110만원+121만원)인 331만원인데 운용수익률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운용수익률이 임금인상률보다 높아야 손에 쥐는 퇴직금이 DB형보다 더 많게 된다. DB형을 선택한 직장인 정모(31)씨는 “임금상승률이 5% 안팎인데 회사가 계약한 회사의 DC형 상품 수익률이 3%에 불과했다”며 “퇴직금은 장기적으로 쌓아두는 돈인데 출렁거리는 시장에 투자하기에는 불안하다”고 했다. 다만 정년이 연장되는 대신 50세 이후 임금이 줄어드는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직장인은 퇴직 직전 월급으로 정산하는 DB형보다 DC형에 가입하는 게 더 유리하다.
DC형은 펀드 선택이 중요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DC형을 선택했다면 투자상품을 잘 골라야 한다. 은행, 보험, 증권 등 업권별 추천상품과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또 회사가 계약을 맺은 금융회사가 판매하는 상품에만 가입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DC형 상품은 크게 원리금보장 상품과 실적배당 상품이 있다. 원리금보장은 예ㆍ적금, 국공채, 보험(금리) 상품에 투자된다. 원금 손실 우려가 없고 대신 수익률이 1~3%로 사실상 DB형과 큰 차이가 없다. 실적배당은 보험(실적배당), 펀드, 주식 등에 투자한다. 원금 손실 우려가 있지만 펀드만 잘 고르면 수익률이 높다. 노용우 KDB대우증권 상품본부 부장은 “임금인상률이 낮다면 DC형에 가입해 펀드로 수익을 올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률을 잘 따져봐야 한다. 증권, 은행, 보험 등 퇴직연금을 판매하는 회사는 무려 52곳. 작년 1년간 DC형 실적배당 상품의 운용수익률은 0~5%까지 편차가 적지 않다. 증권, 보험, 은행 등 업권별로도 차이가 있다.
특히 위험자산 운용한도가 40%에서 70% 수준으로 대폭 높아지게 되면 펀드 선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손실 위험도 커지기 마련.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지금은 위험자산 운용한도가 워낙 제한적이어서 DC형과 DB형이 사실상 수익률 차이가 별로 없다”며 “앞으로 규제가 풀어지면 수익률 차이가 커질 것인 만큼 꾸준히 수익률을 내는 펀드 위주로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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