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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관객’이 필요한 시대

입력
2014.08.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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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은 없었다. 그보다 더 필요했을 관객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후 30여 분 가량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상황은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졌다. 아쉽게도 이들의 음악에 주목하는 이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직접 만들었을 처음 들어보는 가락과 노랫말은 내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기존 유명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에도 그들의 어설픈 솜씨들이 여실히 나타났다.

그래,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사로잡기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초보 노래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발걸음을 멈춰 시선을 잡아끌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우선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한 곡이 끝나면 다시 다른 곡의 반주가 시작됐다. 듣는 이가 없으니 조금은 쉬거나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때울 수도 있으련만 곡과 곡 사이 간격이 거의 없었다. 서로 잠깐씩 주고받는 윙크 섞인 눈짓에는 두 사람이 맞춰왔을 합의 조화마저 넉넉히 보이기도 했다. 주변의 무관심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음악을 맘껏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함을 넘어서는 ‘순수한 열정’이 그들의 뒷모습을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기도 했다. 누구라도 멈춰 서서 이들을 바라봐주었으면 싶었다. 팔짱 낀 연인들이 지나가며 간혹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멈추어 귀 기울이는 ‘아량’은 아무도 베풀지 않았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괜한 아쉬움이 일렁거렸다. 설익은 노래꾼들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문득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꿈 많던 고등학생 시절, 입시준비의 번잡함 속에서도 뜻 맞는 몇몇 친구들과 잠시 음악의 세계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몇 개월에 걸쳐 동네 기타학원에 모여 앉아 낯선 악보와 연주코드들을 들여다보며 연습에 매달리던 기억들이 새살 돋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만든 그룹사운드의 이름이 아마도 ‘TNT’였던가. 거칠고 반항적인 Rock 음악에 빠져 있던 그 즈음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들은 공연 날까지 잡은 뒤 미친 듯이 연습에 매달렸었다. 어릴 때부터 합창단 활동을 해왔던 나는 등 떠밀려 보컬을 맡았고 당시 그토록 좋아했던 헤비메탈 그룹 ‘Judas Priest’의 보컬 ‘롭 헬포드’와 맞대결(?)을 꿈꾸기도 했다.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참고서가 아닌 악보를 붙들고는 목청을 틔운다며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댔다. 함께 자취를 하던 누나의 집에서 나가라는 구박 쯤은 서럽지도 않았다. 심장을 달구는 ‘치기’에 잔뜩 물들어 있던 때였다. 드디어 친구와 지인들로만 듬성듬성 객석이 채워진 공연 당일, 황망스럽게도 무대 울렁증에 치인 나는 멋들어진 샤우팅 기법은커녕 잔뜩 쪼그라든 목소리로 간신히 몇 곡을 부른 뒤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누나의 안쓰러운 눈빛과 꽃다발만이 내 팔에 애처롭게 안겼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음악은 내 길이 아닌게벼’를 외쳐야만 했다.

오래 전 기억이 스치면서 입가에 절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돌이켜 보면 참담한 결과를 떠나 그 과정 자체가 너무도 신나는 일이었다. 아주 잠깐의 ‘일탈’이긴 했지만 심장이 뛰는 흥겨움에 몸을 맡겼던 기억은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사십 대 중반을 훌쩍 넘은 지금 내 안에 그 꿈 많던 ‘소년’의 기운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직은 붙잡아 두고 싶은데 누가 철없는 소리한다고 잔소리를 할까 봐 슬쩍 두렵기도 하다. 나이를 떠나 꿈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인데 기껏 주변의 눈치나 살피는 것을 보니 아쉽게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허공 속에서 한동안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두 청년은 여전히 흥에 겨워 자신의 음악에 빠져있었다.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두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출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관객 하나 없는 거리에서 허연 가로등 불빛만이 이들의 어깨를 감싸주었지만, 꿈을 위한 열정 넘치는 첫걸음은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뜻을 품었으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용기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길 바랄 뿐이다.

주변을 살피는 힘이 점차 사라지는 요즘, 이 두 사람의 멋진 ‘치기’에 격려와 용기를 얹어줄 관객들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누구나 꿈을 품고, 꿈을 먹고 사니 말이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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