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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황의 시장 개척

입력
2014.08.1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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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십자군 원정을 주도한 로마 가톨릭의 수장이 교황이란 사실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사회운동가도, 경제학자도 아니다.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세속 사회에서 배금주의에 밀려 소외돼 가고 있는 인간적 가치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역할이다. 4박5일 간의 방한 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기에 앞서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중세 십자군 원정을 주도한 로마 가톨릭의 수장이 교황이란 사실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사회운동가도, 경제학자도 아니다.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세속 사회에서 배금주의에 밀려 소외돼 가고 있는 인간적 가치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역할이다. 4박5일 간의 방한 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기에 앞서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교황은 경제학자가 아니다. 방향을 가리킬 뿐. 철학자에 가깝다. 시장은 비인간적이다. 강자만 선택한다. 경험은 우파 편이다. 좌파는 당위론자다. 약자도 사람이다. 교황은 좌파다.

“복음의 기쁨, 그리고 국내외에서 행한 강론들은 일관된 논리구조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당대의 사회구조에 맞서 형제애의 공동체(즉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것이 곧 공공선, 진보, 발전이다. 둘째, 그렇다면 현재의 사회구조는 어떠한가? 바로 “규제 없는 자본주의, 곧 새로운 독재”(복음의 기쁨)다. (…) 여기서부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생태 파괴가 비롯됐다. 셋째, “자본의 세계화”는 전 지구적인 차원의 사회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교황은 자본의 세계화를 “연대의 세계화”로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 넷째, 이런 국내외의 사회구조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이 만들어지고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다. (…) 다섯째, 하여 신자와 사제의 사명은 가난한 자의 편에서 당대의 사회구조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특히 사제들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 (…) 교황은 지난 5월9일 유엔 사무총장과의 만남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했다. 개인과 국가, 국제의 모든 차원에서 우애와 연대의 정신이 과학적인 능력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황은 정신적, 도덕적 운동과 동시에 국내외의 제도 개선을 촉구한 것이다. (…) 교황은 연대와 공공선을, 대통령은 경쟁과 성장을 제도 개선의 지침으로 삼았다. 박 대통령에게 “규제는 없애야 할 암덩어리”인데 교황은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정의했다. 교황의 말씀이 맞는다면 박 대통령의 숙원이 이뤄지는 순간 우리는 정치와 더불어 경제에서도 독재를 맞게 되는 것이다.”

-교황의 경제학(경향신문 ‘정동칼럼’ㆍ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 전문 보기

“정부의 영리병원 허용, 금융규제 완화 같은 경제정책은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는 교황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좌파매체들은 지금 난리다. ‘고삐 풀린 시장경제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는 교황 말씀에 딱 들어맞는다는 거다. (…) 고백하자면 나는 가톨릭 신자다. 신심이 깊지는 못하지만 교황의 파격적이리만큼 청빈하고 소탈한 말과 행동은 경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대한 교황의 언급은 종교적인 의미 말고는 진리로도, 사실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이 경험한 자본주의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아니라 부패 아니면 정실 자본주의뿐이다. 자본주의 비판은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지만 교황은 제3세계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 빈부격차가 극심한 조국에서 교황은 해방신학을 내놓고 지지하진 않았지만 가난한 이에 대한 착취를 비판하며 청빈을 실천했다. (…) 안타깝게도 페론주의를 숭상하는 아르헨티나는 페론이 남긴 포퓰리즘과 폐쇄경제 탓에 최근 여덟 번째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았다. 유럽에서 재정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는 우연찮게도 죄 가톨릭국가(그리스는 그리스정교)다. (…) 이 나라들은 규제 많고 정부 지출도 북유럽 뺨치는 비중이어서 ‘고삐 풀린 시장경제’라고 하기 어렵다. 차라리 직업윤리는 약하고 돈을 죄악시하면서 관료와 부패에는 관대한 가톨릭 문화가 재정위기를 키웠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자본주의를 일깨워준 신학자 마이클 노백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제론은 가난한 자를 가난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교황을 공경한대도 그의 빈곤 경제학만은 따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바로잡아야 마땅하되 중요한 것은 가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교황이 말하는, 또 좌파진영에서 강조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대만으로는 한참 모자란다. (…) 가난한 사람을 진짜 도우려면 그들이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교황이 준 경제적 화두는 마음과 윤리 바로잡기에 소중히 활용하되,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기로 쓰는 건 교황도 원치 않는다고 믿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빈곤 경제학’(동아일보 기명 칼럼ㆍ김순덕 논설실장) ☞ 전문 보기

교황이 누군가. 로마 가톨릭 수장이다. 중세 위계사회를 지탱했던 지배 이념이 가톨릭이다. 여전히 신학은 선교를 명령한다. 종속이론의 고향 남미가 낳은 교황에게도 예외는 아닐 터.

“냉정하게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바티칸의 치밀한 전략이다. 아시아를 겨냥한 동방(東方)공정이다. 세계의 가톨릭 신자는 12억 명. 대륙별로는 아메리카(5억9000만 명)-유럽(2억4000만 명)-아프리카(1억8500만 명)-아시아(1억3000만 명) 순이다. 인구 대비 신도 비중도 아메리카(63.2%)·유럽(40%)은 거의 포화상태이고, 현지에선 바티칸은행의 흑막과 사제 스캔들로 이미지가 망가졌다. 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 비중은 불과 3%. 그나마 필리핀(신도 7500만 명)을 빼면 불모지나 다름없다. 아시아는 바티칸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교황이 외교관계가 없는 중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굳이 축복메시지를 보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티칸 입장에서 한국 가톨릭은 효자다. 온갖 박해를 딛고 신도 500만 명을 넘었다. 한국 개신교가 교회 세습 같은 추문에 휘청거리는 동안 중산층 엘리트를 중심으로 가톨릭 신자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 종교학자들은 한국 가톨릭의 강점으로 현지화를 꼽는다. 개신교 주류는 프로테스탄트→미국→한국으로 건너와 비교적 근본주의적 성향이 짙다. 반면 가톨릭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다양한 국가를 거쳐 동쪽 끝 한국에 전래됐다. 조상 제사까지 인정할 만큼 거부감이 덜하다. (…) 뉴욕타임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사회 문제에는 진보적, 신학에는 보수적’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방한에서도 사회 문제에 관한 한 진보적 색채가 그대로 묻어났다. 낮은 자세로 약자를 어루만지고 온 사회를 힐링시키는 새로운 리더십이 돋보였다. (…)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수장의 본모습도 유감없이 보였다. 그는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AYD)에 집중했으며, AYD엔 개막식과 폐막식 모두 참석했다. 이번 방한 목적이 아시아의 교세 확장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팬 서비스 차원으로 봐야 한다.”

-교황까지 편 가르는 두 개의 시선(중앙일보 ‘이철호의 시시각각’ㆍ수석논설위원) ☞ 전문 보기

“작년 3월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인의 공감과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소탈한 모습과 꾸밈없고 분명한 메시지로 효과를 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 그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첫 교황이다. 엘살바도르(구세주), 상파울루(바울 성인), 콘셉시온(성모잉태), 아순시온(성모승천) 등 곳곳의 가톨릭식 지명이 예증하듯 라틴아메리카는 명실공히 가톨릭의 최대 중심지다. 세계 최대의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과 멕시코를 비롯해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의 45%가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하고 있으며 교황을 배출한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신자는 인구 4000만명 가운데 70%에 이른다고 한다. (…) 2013년 11월에 발표된 교황 권고문 복음의 기쁨은 이렇게 염원한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 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저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이는 한 지도자의 신선한 각성과 개성의 표현이라기보다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의 전통과 역사를 반영하는 고백이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막바지에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신자들에게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주교들에게 대륙 차원의 사목 계획을 권고했다. 이를 계기로 신자들이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기초교회공동체가 라틴아메리카 여러 곳에 세워졌다.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주교회의는 이 공동체를 교회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가난, 정치적 억압, 폭력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신자들이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이어 1979년 멕시코 푸에블라의 제3차 회의부터 2007년 브라질 아파레시다의 제5차 회의까지 주교들은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승인하고 재확인했다.”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의 열매(경향신문 ‘국제칼럼’ㆍ박구병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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