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벤츠·크라이슬러 등 조사 수입차 비싼 가격과 횡포에 철퇴
외국기업들 '희생양' 주장에 中당국 "공정한 법 집행" 반박
토종·서양 호랑이 모두 잡기 나서 "다음 타깃은 금융기관" 전망도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 콧대 높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벌벌 떨고 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이 이들 기업에 대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가격 담합 등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해 왔다며 무거운 벌금을 때릴 것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공식 확인되진 않았지만 아우디에게는 무려 18억위안(약 3,000억원)의 벌금이 부과될 것이란 게 중국 매체들의 보도다. 반독점법 규정만 놓고 본다면 퀄컴에겐 최고 10억달러(약 1조200억원)의 벌금이 부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론상으로는 MS도 최고 6억달러(약 6,100억원)의 벌금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 광풍의 실태, 이에 대한 외국 기업 및 중국 정부의 입장, 소비자 반응과 정치적 배경 등에 대해 살펴본다.
반독점법 위반 조사 전방위로 확대
중국 국가공상총국은 지난달 28일 MS의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등 4곳의 사무실을 급습했다. 국가공상총국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상무부와 함께 중국의 반독점법 집행 기관 세 곳 중 한 곳이다. 조사 요원들은 이날 MS 사무실을 이 잡듯이 뒤진 뒤 각종 기밀 서류들과 컴퓨터를 가져 갔다.
이달 4일에는 발개위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상하이 사무실을 덮쳤다. 이틀 뒤 리푸민(李朴民) 발개위 대변인은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광범위한 반독점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아우디와 벤츠 크라이슬러 등이 조사받고 있고, 일본 12개 자동차 업체는 이미 조사를 마쳐 법에 따라 처벌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일부 매체에선 조사 기업 수가 1,000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수입차 업체의 폭리와 횡포에 대한 고발 기사들이 쏟아졌다.
13일엔 후베이(湖北)성 물가국이 판매업체가 부담해야 할 자동차 출고 전 검사비를 담합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가해 온 우한(武漢)시의 BMW 딜러 4곳에 대해 총 162만6,700위안(약 2억7,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중국 당국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 이후 자동차 유통 업체에 부과된 첫 벌금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자동차 제조사에 대한 벌금 부과가 줄을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판매상간 횡적 담합에 대한 벌금이 비교적 작았다면 제조사와 판매상간 종적 담합에 대한 벌금은 클 수 밖에 없다. 만약 제조사가 판매상들에게 일정 가격 이하로는 자동차를 팔지 못하도록 강제한 혐의가 확인될 경우 당국은 이로 인한 수익을 몰수하고 해당 업체에 대해 전년 판매액의 1~10%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자동차 업체 당 수천억원대의 벌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에 이은 다음 목표물이 금융기관이 될 것이란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당국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는 신호다.
오랜 준비 기간 “올 게 왔다”
중국이 외국 독점 기업들에 칼을 들이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에서 반독점법이 시행된 것은 2008년 8월부터. 사실 미국에선 1890년대부터 독점기업들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우리 나라의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것도 1986년이란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반독점법 시행은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일부 외국기업들은 이런 법의 허점을 악용, 다른 나라에선 하고 있지 않은 독점 행위들을 중국에서는 버젓이 자행해왔던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수입 자동차의 비싼 가격이다. 이번 반독점 조사에 대해 “때가 됐다”, “올게 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단 반독점법부터 만든 중국은 그 동안 조직을 꾸리고 순차적으로 벌금액을 올리면서 법 집행 경험을 쌓아 왔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1월 한국의 삼성과 LG, 대만업체 CMI 등에 액정 패널 가격 담합으로 총 3억5,300만위안의 벌금을 때렸다. 이어 마오타이(茅台), 우량예(五粮液) 등 중국의 양대 백주(白酒) 업체가 가격 담합 혐의로 4억4,900만위안의 벌금을 냈다. 지난해 8월엔 허성위안(合生元) 등 6개 분유업체에 6억7,000만위안의 벌금이 부과됐다. 같은 달 라오펑샹(老鳳祥), 예위안(豫園) 등 5개 유명 귀금속 업체도 철퇴를 받았다. 이런 실적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된 중국 당국이 독점 횡포를 부려온 외국기업들을 이제 직접 겨냥하고 나선 것이란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외국기업 불만고조, 더 억울한 중국
조사 대상이 된 외국기업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중국이 자국 기업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주중 유럽상공회의소는“당국이 충분한 해명도 듣지 않고 처벌과 해결책을 강요하는 위협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불만이 여러 건 접수됐다”며 “반발하지 말고 변호사도 부르지 않으며 자국 정부 혹은 상공회의소에 알리지 말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도 “중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가 투자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외국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으름장을 놓고 있는 셈이다. 유독 미국 업체들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미중 관계 악화 영향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반독점 당국은 억울한 건 자신들이라고 강변한다. 법이 있고 위반 행위가 있는데 집행 기관이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는 논리다. 또 공정한 시장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가 오히려 외국기업들의 흑색 선전으로 매도되고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가격 인하 잇따르며 소비자들 환호
중국 소비자는 박수를 치고 있다. 당국이 칼을 들자 외국 기업들이 줄줄이 가격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재규어랜드로버, 크라이슬러, 도요타, 혼다 등이 완성차 가격과 부품가를 인하했다. 사실 그 동안 중국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횡포와 부조리는 도를 넘어섰다. 벤츠와 BMW, 아우디의 경우 미국과 비교할 때 평균 65% 비싸다는 게 중국 언론들의 지적이다. 일부 모델들은 3배 차가 난다.
특히 부품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200위안(약 3만3,000원)짜리 나사 한 개를 3,000위안(약 50만원)이나 받는 일도 허다하다. 실제로 벤츠 C클래스 승용차의 경우 중국에서 모든 부품을 교체하면 신차 가격의 12배가 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통상 다른 나라에선 자동차 총 부품 가격의 합계가 신차 가격의 3배 안팎이다.
더군다나 중국에선 판매상이 부품 판매 및 수리까지 독점하고 있다. 소비자들로선 아무리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입차 판매상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는 부품을 구할 수가 없다. 부품만 사고 다른 곳에서 수리를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횡포다.
부패 척결하고 국가통치 능력 현대화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입 자동차 시장에 대한 중국 당국의 철퇴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부패 척결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실 그 동안 중국 시장에서 수입차 업체가 이처럼 폭리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뒤를 봐 주는 세력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유명 수입차 판매상의 뒤에는 ‘힘 좀 쓰는 집안’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시 주석이 이를 간파하고 국민들 불만이 집중된 이 곳을 타격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형사 처벌 받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 대한 조사를 단행하며 정치 호랑이(거물)를 잡은 시 주석이 이젠 서양 호랑이와 그 뒤에 숨은 배후 세력들도 잡겠다고 나섰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시 주석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다. 벌금 폭탄을 맞을 것으로 예고된 아우디가 그 동안 중국 관용차의 대명사로 사실 정계와 가장 가까웠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중국공산당이 지난해 11월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8기3중전회)에서 ‘전면 심화 개혁’을 결정하고 자원 배분에서 시장이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큰 흐름에서 주목해야 하는 대목이다. 시장의 장벽을 제거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독점법을 엄격하게 시행할 수 밖에 없다. 시 주석은 이를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새롭게 하면서 국가통치능력 제고라는 ‘다섯 번째 현대화’도 이룬다는 포석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 외국기업의 임원은 “시장경제 국가에서 반독점법은 헌법과 같은 것”이라며 “땅 짚고 헤엄치던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났으며, 이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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