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회사원 김하얀(26ㆍ여)씨는 서울 장안동의 한 고깃집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2도 화상을 입었다. 고기를 굽던 중 테이블 아래 노출된 화로 표면에 오른쪽 무릎이 닿은 것. 같이 식사를 한 남자친구가 “뜨거운 화로를 어떻게 안전장치 하나 없이 방치했느냐”고 항의하자 식당 주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른 곳도 다 이렇게 장사한다”며 “치료비는 주겠지만 손님이 부주의한 것이니 사과는 못한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고깃집 등 식당에서 화로나 불판에 의한 화상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피해 보상은커녕 사고 방지를 위한 관련 규정이 전무해 소비자 불만이 높다.
15일 한국소비자원 위해정보팀이 집계한 ‘음식점에서 발생한 화상사고’ 현황에 따르면 2009~2013년 피해접수 건수는 437건이었다. 이 가운데 화로, 가스레인지 등 물품에 의한 화상은 238건(54.4%)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물품에 의한 화상은 2009년 28건에서 지난해 66건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이런 피해를 입어도 보상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은 소비자가 사업자를 신고하면 한 달 정도 합의기간을 주고 합의되지 않을 경우 소비자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사업자에 배상 정도를 권고한다. 문제는 분쟁조정위의 권고에 법적 강제력이 없어 피해보상을 받으려는 소비자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소송에 드는 시간, 비용 탓에 배상 청구를 포기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화상 사고를 방지할 관련 법규도 전무한 실정이다. 식품안전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기구 및 용기 포장의 기준 및 규격’에는 음식물과 닿는 금속의 성분 관련 규제만 있을 뿐 불판이나 화로 등 조리기구에 관한 안전기준은 없다.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안행부 관계자는 “음식점 화상 등 사고에 대비한 관련 법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사고가 잦아지면 정책개발 등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와 관련 단체들은 안전기준 등을 명시한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병록 소비자안전협회장은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이 별다른 안전검사도 하지 않고 음식점 영업허가를 내주고 있는데 이는 안전불감증의 원인이 된다”며 “정부는 행정법규에 세부 조항을 만들어 음식점의 안전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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