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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龍이 된 중국, 상전벽해 30년 현장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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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龍이 된 중국, 상전벽해 30년 현장보고서

입력
2014.08.1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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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샤오보어 지음ㆍ박찬철 등 옮김

새물결ㆍ943쪽ㆍ4만3,000원

덩샤오핑의 개혁 시작된 1978년부터 세계 호령하는 G2 국가 된 지금까지

천박함과 냉혹함으로 일궈낸 압축성장

격하게 흔들린 경제사 속 숨은 이야기

다국적기업이 밀집한 중국 상하이 푸동의 마천루는 30년여 년간 급격히 전개된 중국의 현대화를 상징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국적기업이 밀집한 중국 상하이 푸동의 마천루는 30년여 년간 급격히 전개된 중국의 현대화를 상징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홍콩 청년 경제학자 장우창은 1979년 중국 광저우를 여행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에 시동을 걸 즈음이었다. 그가 머물던 호텔에선 여성 두 명이 매일 수십 ㎡의 뜰에서 낙엽을 쓸고선 종일 아무런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담장의 작은 구멍을 보수하는데도 세 사람이 동원됐다. 한 명은 회반죽을 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구멍을 메웠으며 또 다른 사람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가리켰다. 한 고급 관리는 비자와 여권을 명확히 구분하지도 못했다.

막 현대화의 기지개를 켠 중국에 대해 장우창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중국의 현대화는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모두 커다란 장애에 부딪칠 것이다. 다른 국가를 기준으로 가늠해보면 중국 전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은 45세 이하에서는 거의 몇 사람 찾기 힘들다.”

그러나 장우창의 예측은 빗나갔다. 30년 가량 지난 지금 중국은 기록적인 경제 성장률을 발판으로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호령하는 G2 국가로 꼽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격탕 30년’은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알린다. 1978년 개혁개방의 서광이 비출 무렵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으로 중국의 부활을 공식화할 때까지 재계에서 벌어진 급변과 경제계 인사의 부침을 연단위로 세세히 묘사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식 공산주의(중국식 자본주의라 불러도 무방할)가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가 돼 펼쳐진다. ‘격하게 흔들린다’(激蕩)는 제목이 암시하듯 압축성장에 담긴 경제계의 극적인 비사를 품었다.

중국 정부는 1983년 이전까지 개인의 자동차 매매와 운송을 금지했다. 어떤 상품을 계획적으로 매수한 후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행위는 ‘투기전매’라 하여 경제범죄로 규정했다. 저장성에서는 자전거 뒤에 닭이나 오리를 세 마리 이상 싣고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적발된 사람들이 공개비판을 받거나 옥살이를 해야 했다. 1980년대만해도 민영공장에 다니면 체면이 서지 않았고, 작은 점포를 열어 장사를 하면 ‘개체호’(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라 불리며 멸시당했다. 화장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을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기업의 나라였으니 당연했다. 멸시는 곧 선망으로 바뀌었다. 일자무식의 농민이 부호가 되거나 경제에 무지했던 군인이 경제를 휘어잡았다. 혼란스럽고 무절제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 세계로 향하는 대기업들이 성장했다.

저자는 “바람 따라 흘렀고, 돌을 만나면 돌아갔”던 경제의 자유 물줄기가 고속성장으로 이어진 것이 교육 덕분이라 주장한다. 덩샤오핑이 1978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으로 당선된 뒤 주관한 첫 행사는 전국과학대회였다. 덩샤오핑은 이 대회에서 과학기술 연구를 국가 중점과제로 확정했다. 6,000명이 참가한 전국과학대회의 뒷줄엔 인민해방군에서 파견된 33세 청년 런정페이가 있었다. 그는 전군 기술 성과 일등상을 받았다. 런정페이는 10년 뒤 단돈 2만 위안으로 전자회사를 차렸다. 세계 통신장비업계의 거물 화웨이였다. 1978년엔 55개 대학이 다시 문을 열거나 개교했다. 전국적인 대학입시도 부활했다. 610만명이 응시해 40만명이 대학교정에 들어섰다. 초야에 묻혔던 인재들이 정규 고등교육을 받으며 훗날 중국 고속성장의 밑돌이 됐다.

저자는 중국 경제의 발전을 이렇게 촌평한다. “(1978~2008년 중국 기업가들은) 초야 출신으로, 조금은 야만스럽고 성정은 표류했지만 꾹 참으면서도 무엇인가를 얻는 데는 과감했다. 그들의 천박함은 어떠한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핵심을 찔러 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그들의 냉혹함은 일체의 도덕성을 버리면서 분명한 이익관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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