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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지 왜곡

입력
2014.08.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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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우가 있다.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결정을 오해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내 의도를 원래와 다르게 철썩 같이 믿고 설명을 해도 한귀로 흘려버린다. 그런 날은 정말 탈진할 정도로 무기력해지고 허무해지기도 한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들로 오해가 깊어지지 않았을까 반성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몰라줘서 억울하기도 하다.

같은 상황에 있어도 사람들이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원래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정보에 더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 역시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되기도 한다.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일부러 사실을 왜곡하지 않아도 시각차이가 서로 간에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니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경험을 해도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다투게 된다. 그리고 불신이라는 감정이 깔리면 소통과 공감은 애당초 불가능해진다. 불신이 있는 상태에서는 상대의 좋은 의도는 오히려 음흉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가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지왜곡’이라는 용어가 있다. 생각을 할 때 왜곡된 방향으로 판단하고 이 판단을 근거로 행동이 반복돼 힘들어 지는 것을 말한다. 심리치료 중에 인지행동치료가 있는데 인지왜곡을 찾아내 변화를 주는 상담방법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감정을 토대로 하고, 이 감정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영향을 받는데, 우리의 생각 중 습관적으로 왜곡된 성향, 즉 인지왜곡을 찾아내 바꾸는 것이다. 다양한 인지왜곡이 있고 누구나 약간씩은 이런 모습을 보인다. 임의적 추론(arbitrary inference)이라는 인지적 왜곡은 아무런 구체적 근거 없이 판단을 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에 빠져 인사하지 못한 동료를 보고 ‘또 나를 무시한다’고 섣불리 생각하는 패턴 등이다. 그냥 자신의 감(感)으로 판단하고는 우기는 것이다. 상황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도 있다(tunnel vision). 다양한 상황 중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 생각과 기억만을 떠올리는 것이다. 타인이 한 행동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를 찾는 인지왜곡을 부정적 귀인(Negative Attribution)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행동 속에 나쁜 동기와 의도가 있다고 자동적으로 추정하기 때문에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 ‘저 사람은 원래 성격이 나쁘니까’ ‘원래 배려심이 없어’ 라고 미리 정해두고 보는 것이다. 아예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단정해 버리고 마음을 읽는다(Mind Reading)고 억측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패턴들이 반복되면 소통은 점점 멀어진다. 감정에도 시너지가 있다. 미워하고 의심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감정은 더욱 악화하고 내 생각,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할수록 소통과 공감은 멀어질 뿐이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까? 저 부분만 볼까? 답답하다. 설명을 해도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할까’라고 누군가가 답답해진다면 이 때 필요한 것은 생각의 융통성이다. 역지사지가 방법이지만 당장 화가 나고 당황하는 경우에는 쉽지가 않다. 나는 상황을 이렇게 이해하지만 상대방은 경험이 다르니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고 ‘연습’해야만 한다. 물론 쉽지가 않다. 소통하기 위한 설명을 변명으로 보거나 자기합리화로만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간의 소통을 강조하는데 인지왜곡에 사로잡혀 있으면 ‘영혼이 있는’ 소통은 어렵다. 상대방에 대한 헛된 기대, 과잉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내 마음을, 내 상황을 저 사람은 모른다. 알고 이해해 주면 정말 대단하고 감사한 것이다. 서로가 모르니 자기 생각, 자기주장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소통하고 공감 받았을 때의 행복감은 정말 크다. 그런 경험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역지사지를 다시 연습해보려고 한다. 무언가 소통이 되지 않고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진심을 다하는 데도 통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인지왜곡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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