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 자랑하는 이슬람 수학 미르자카니 수상으로 저력 확인
"누구나 수학이 즐거울 수 있다" 수상자들 한결같이 입 모아
올해 필즈상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은 단연 첫 여성 수상자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다. 1936~2010년까지 배출된 필즈상 수상자 52명(수상 거부한 그레고리 페렐만 포함)이 모두 남성이다. 수학은 남성에게 더 유리한 영역이라고 인식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첫 여성 수상자 배출로 이런 편견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서울세계수학자대회의 의미는 크다.
여성수학자 고계원 아주대 교수는 “40대 미만이란 조건이 여성에게 필즈상 문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번 대회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에 관계 없이 필즈상을 받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도 이번 대회에 남편을 동반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시상식 직후 열린 수상자들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수십 년 전만 해도 여성이 수학을 연구하는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앞으로 더 많이 변할 것”이라며 “수학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여학생들에게 특히 더 중요하다”고 후학들을 격려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선배 수상자들의 이론을 창의적으로 증명한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1990년 필즈상 수상자 에드워드 위튼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원 교수가 제안했던 특별한 성질의 곡면에 관한 이론이 미르자카니 교수를 거쳐 완성됐고, 1982년 필즈상 수상자인 고 윌리엄 서스턴 미국 코넬대 교수가 정의한 특정한 동역학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미르자카니 교수를 거쳐 확립됐다. 덕분에 미르자카니 교수는 필즈상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여겨지는 세계수학자대회 기조강연자로 이슬람권 여성으로서 처음 초청받았다.
그의 수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슬람 수학의 저력도 확인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제약이 많은 이슬람권에서 첫 수상자가 나온 건 놀랍다는 반응이다. 박부성 경남대 교수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10위권 유지 등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란이 재능 있는 학생을 일찌감치 발굴해 키워내는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란과 함께 브라질의 수학교육 역시 이번 대회에서 주목 받았다. 미주와 유럽 대륙이 독식하다시피 해온 필즈상 수상 영역을 수학 신흥국으로 확대한 주인공이 바로 브라질 출신의 아르투르 아빌라 프랑스 파리6대학 교수다. 월드컵에 수모를 당한 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국에 아빌라 교수가 새로운 희망을 안긴 셈이다.
사실 브라질 전반적인 수학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하다고 보긴 어렵다. 한국인 처음으로 기조강연을 한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는 “중요한 건 세계적인 수학자를 길러낸 국가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아빌라 교수는 프랑스인으로 귀화하기 전 브라질 순수및응용수학연구소(IMPA)에서 21살에 박사가 됐다. IMPA는 학위과정을 운영하면서 60년 간 수학을 꾸준히 지원해온 국립연구기관으로 유명하다. 황 교수는 “국내 내로라하는 수학자들 대부분이 박사학위를 외국에서 받았다는 현실은 분명 바꿔가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빌라 교수는 간단한 시스템에서 복잡한 혼돈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완전하게 해석해 관련 연구들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대개 독립적으로 연구하길 즐기는 다른 수학자들과 달리 대부분의 업적을 수십 명의 과학자들과 함께 이뤄낸 걸로도 이름 나 있다.
만줄 바르가바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유명한 상을 휩쓸며 이미 이견 없는 후보에 꼽혀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불리는 독일의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만든 연산 법칙을 더 높은 차수의 다항식으로 확장해 아무도 상상 못했던 새로운 법칙을 발견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 유명해진 앤드류 와일스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2년 만인 2003년 프린스턴대 정교수로 임용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복잡한 자연현상을 기술하는데 쓰이는 미분방정식의 권위자인 마틴 헤어러 영국 워릭대 교수는 학창시절 이미 소리를 편집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상용화하는 등 컴퓨터 수학의 귀재다. 사실 컴퓨터 잘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 자체에만 숙달됐다면 그가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을 리 없다. 컴퓨터의 물리학적 시스템을 헤어러만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수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기자회견에서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누구나 수학이 즐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즐거움을 느낄 기회를 못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바르가바 교수는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이 바뀔 때가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교에서 로봇처럼 문제 풀이만 가르칠 게 아니라 서로 아이디어를 던지고 답을 발견하는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 기조강연자를 배출하고 초청강연에도 역대 최다(5명) 수학자가 나선 우리나라는 개최국 이점도 있는 만큼 필즈상에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박형주(포스텍 교수) 대회 조직위원장은 “이번 대회가 국내 연구 환경을 양적 성과에 매달리지 않고 도전적 문제 해결에 열중할 수 있도록 바꿔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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