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영업 관행에 정면으로 배치 대출실적 기존 거래기업이 절반 차지
기술평가 위한 수수료 부담도 논란
중소기업이 기술력만 뛰어나다면 담보나 보증 없이도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금융’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창조경제 활성화’ 지원의 하나로 도입돼 시행중인 기술금융이 담보 위주 영업을 하는 은행권의 대출 관행과 정면으로 배치하면서 실제 기술에 의존한 대출 상품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모습이 적지 않아서다. 금융위원회가 연일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13일에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신용대출 제도인 금융중개지원대출의 기술형 창업지원 프로그램 대상에 추가하는 등 은행권의 화두로 떠오른 기술금융. 하지만 시중은행이 쏟아내는 기술금융 대출 내역을 보면 신규 기업보다 기존 거래 업체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고 있으며,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 7월부터 시행 중인 기술신용평가시스템의 조기 안착도 요원해 앞길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13일 금융위에 따르면 기술신용평가 때 필요한 기술동향과 시장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신용평가시스템이 구축된 7월 이후 은행들은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가 반영된 대출 상품을 통해 한 달간 555개 기업에 약 3,300억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TCB 대출을 받은 기업들 가운데 기존에 은행과 거래 관계를 유지해 온 곳이 절반에 이른다. ‘보신주의 혁파’를 앞세운 은행들의 기술금융이 현장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TCB 대출 기업 42곳 중 절반인 21곳이, 하나은행은 46곳 중 19곳(약 41%)이 기존 거래 기업이다. 우리은행은 48곳 중 19곳(약 40%), 외환은행도 19곳 중 7곳(약 37%)이 이전에 대출을 해줬던 기업들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부실 발생에 대한 금융당국의 면책 규정만 정확히 정리된다면 은행이 기술금융을 확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TCB와 은행들이 기술신용정보 수수료를 놓고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도 기술금융의 앞 날에 대한 걱정을 짙게 한다. 기술보증기금 보증부 대출이나 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민간은행에 대출자금을 위탁하는 간접대출) 적용 시 TCB의 기술신용평가를 의무적으로 받게 된 은행들은 건당 100만원 수준인 기술신용평가 수수료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특히 대출 미실행 시 발생되는 수수료에 대한 은행들의 반발이 크다. 반면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하는 TCB로서는 지금의 수수료 수준으로도 당장 적자를 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TCB와 은행권은 대출 미실행 시에는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다. 한 TCB 관계자는 “새로운 시스템을 시행부터 하고 협의를 진행하다 보니 갈등이 빚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