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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된 전자발찌

입력
2014.08.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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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20회나 주거지 떠나 거리 활보해도 제재 전무

보호관찰소 "생활하다 보면 정상 참작…" 안일한 감독 탓

전자발찌(위치추적전자장치)를 찬 성범죄자가 수십차례 주거지를 이탈해 거리를 버젓이 활보했는데도 제재는 전무했다.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며 관리ㆍ감독 당국이 미온적 대처를 했기 때문인데, 느슨한 법규정 적용이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전자발찌를 착용한 연모(32)씨는 지난달 27일 강서구 화곡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 서울 남부보호관찰소의 소재 파악 요청을 받은 경찰에 붙잡혔다. 연씨는 지난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2010년 대구지법 의성지원으로부터 5년간 전자발찌 부착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주거지 이탈 금지 명령도 내려졌다.

당초 보호관찰소 측은 거주지를 무단 이탈한 연씨에게 구두 경고를 하고 귀가 조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씨가 인근 지구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출동한 경찰관 얼굴에 침을 뱉고 폭언을 퍼붓는 등 난동을 부리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검거 후에야 연씨가 2012년 12월부터 이날까지 20차례나 주거지를 벗어난 상습 이탈자임을 확인했다. 통상 경찰이 보호관찰소 의뢰로 전자발찌 착용자를 검거해도 신병만 인계하면 그만이었는데, 연씨의 경우는 현행범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탈 전력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법적 제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연씨가 아무런 제재 없이 자유롭게 활동을 했던 것은 관리 당국이 자의적으로 규정을 적용한 탓이 크다. 법무부가 마련한 ‘특정 범죄자 위치추적법 시행지침’에는 전자발찌 착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3회 이상 외출 금지 준수 사항을 어기면 보호관찰소는 경찰에 수사 의뢰해 경위를 파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연씨의 관리 책임기관인 남부 보호관찰소는 그가 이 규정을 16회나 위반한 지난달 중순에서야 수사를 의뢰했다. 남부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전자발찌 착용자가 성범죄와 관련된 맥락에서 규정을 어겼다면 수사 의뢰가 타당하겠지만 술을 마시다 귀가를 늦게 하는 등 가벼운 위반 사례도 많아 무조건적인 처벌은 힘들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당국의 이런 주먹구구식 대응이 성범죄자의 심리적 처벌 효과를 누그러뜨려 재범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2011년 12월 경북 경주에서 성폭력 재범으로 검거된 한 전자발찌 착용자는 이전까지 7차례나 외출 금지 규정을 어긴 상습 이탈자였으나, 관할 보호관찰소는 수사 의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감사원도 지난해 1월 ‘전자발찌 착용자 관리 실태(2010년 1월~2012년 8월)’에 대한 감사를 벌여 전국적으로 외출금지 위반자 45명 중 34명이 규정 위반에도 불구하고 수사 의뢰조차 되지 않은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감사원은 “선량한 국민이 피해를 볼 우려가 커 관련 법규정을 준수하라”며 법무부 장관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으면 심리적으로 범죄를 억제하는 경향이 강한데 규정을 어겨도 처벌하지 않으면 법적 효용성이 떨어진다”며 “외출금지 조건을 위반할 때에는 즉시 재수감하는 등 엄격한 사후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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