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초ㆍ중학교 서예교육 의무화
최근 對美 붓글씨 외교에도 주목
서예 외면받는 우리 현실 안타까워
"원곡 정신 살려 다시 붓 들어야"
“시대를 앞서간 원곡(原谷) 김기승(1909~2000) 선생의 정신을 살려 다시 한번 힘차게 붓을 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제36회 원곡서예문화상 및 제5회 원곡서예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연당(蓮堂) 박영옥(80) 여사와 이동국(51)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1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묵영작업(먹의 농담을 이용해 글씨의 그림자를 표현하는 실험작) 등 열린 서예의 창시자였던 원곡선생의 실험정신이 서예 문화 발전의 돌파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두 수상자는 중국(書法), 일본(書道)이 붓글씨에 힘을 쏟는 데 비해 한때 그들보다 한 수 위였던 한국의 서예(書藝)는 점점 외면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 부장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붓글씨 외교’를 예로 들었다. 3월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은 방중한 미국 미셸 오바마에게 서예작품 ‘후덕재물(厚德載物)’을 선물했고, 미셸은 베이징의 중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중간 우정을 기원하는 ‘永(영)’이란 글씨를 썼다.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미국 대사는 지난해 11월 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의 초등학교를 찾아 붓글씨로 ‘友(우)’라고 썼다. “그만큼 중국이 중화 패권주의의 완성을 서법으로 이행하고 있고 세계가 이를 주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은 1966년 문화혁명 이후 붓글씨 교육을 전면 중단했지만 지난해 초중학교 서법교육을 의무화하는 ‘서법 교육지도 요강’을 발표한데 이어 서법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올리기 위한 전문가 팀을 꾸리는 등 붓글씨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붓글씨를 대중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일본에서 되찾아와 천주교 서울교구에 기증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敬天(경천)’에 대해 박 여사는 “상당히 잘 쓴 글씨이며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지만 더 큰 의미는 글이 담고 있는 무거운 정신과 배경에 있다”고 했다. 사형선고 이후 집행 직전까지 약 40여일 간 쓰면서 “죽음을 붓 예술로 승화했다”는 것이다. 특히 하늘의 뜻을 최고로 내세운 ‘경천’은 안 의사가 ‘제국주의의 심장을 쏜 평화주의자’임을 알리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박 여사가 서예계에 몸 담게 된 것은 중ㆍ고생 남매를 키우던 1970년대부터.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한국의사서화회 명예회장, 서도협회 상임부회장, 각종 대회 심사위원장 등 서예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단초가 됐다. 특히 잦은 수술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박 여사는 서예에 전념하면서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찾았다. 2011년에는 주부클럽연합회가 주관하는 제43대 신사임당상(像)에 추대됐다. 남편과 아들, 사위가 모두 의사 출신인 ‘의료인 가족’으로 20년 넘게 국내외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이 부장은 1988년 예술의전당 설립 당시 서예부에 입문한 창립 멤버로 26년 동안 50회가 넘는 고품격 대형 전시를 기획ㆍ진행하면서 한국 서예사 정립에 일조했다.
원곡서예문화상은 1970~80년대 한국 서예계를 이끌었던 원곡 선생의 70세 생일을 기려 제정됐다. 2000년부터는 서예이론 및 학술저서 분야에 공을 세운 인물들에게 원곡서예학술상도 시상하고 있다. 올해 시상식은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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