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 땅에서 가장 소외된 곳으로 안내해달라” 1984년 5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록도 방문을 강행했다.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던 소록도에서 교황은 한센병 환자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아픔을 위로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소록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소록대교가 놓이면서 세상과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병원과 주택 등 주거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한센인에게 유난히 높고 견고했던 세상의 벽은 아직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소록도마을 어귀에서 만난 고귀환(86)씨는 "예전에 녹동항에서 물건을 사면 상인들은 손 대신 집게로 돈을 받아서 바닷물에 담갔지. 소독해야 한다면서… 그때에 비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우리한테는 음식을 안 파는 식당이 꽤 있어" 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대한민국을 이미 한센병 완치국가로 분류했으나 한센인에 대한 편견은 아직 불치에 가깝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7%가 내 자녀와 한센인 자녀의 결혼을 반대했을 정도다. 소록도에서 20년째 한센인을 돌보고 있는 오동찬(47)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은 그래서 한센병을‘사회적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교통사고 환자가 치료를 마친 후 사회에 복귀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치유된 한센인은 그러질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지난달 오동찬 부장을 제2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술을 펼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수상 자체가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인정하는 일이라며 수상을 거절하기도 했던 오부장은 “편견에 못 이겨 스스로 위축된 한센인들에게는 병리적인 치료보다 관심과 애정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작가 강선봉(76)씨는 '소록도, 천국(賤國)으로의 여행' 에서 1960년대 소록도를 탈출할 당시 세상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었다. "제일 뒷좌석까지 손님이 가득 들어찼다. 내 옆에까지 손님이 앉았다. 그의 몸에 내 몸이 닿았어도 그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아무도 내가 그 섬에서 나온 사람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이 꿈꿔 온 편견 없는 삶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조용히 사는’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지난 4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국가에 의해 강제로 낙태 및 단종 수술을 받은 한센인 19명에 대해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인권단체들은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바로잡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국가는 판결에 불복했고 5월 13일 항소했다. 우리가 외면한 한센인들을 교황이 직접 찾아가 보둠은 지 30년 9일만이었다. 내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을 찾는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성천상은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이 음지에서 헌신적으로 의료활동을 펼친 ‘참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한 상이다. 이윤보다 국민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JW중외그룹 창업자 故 이기석 사장의 생명존중 정신을 성천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2회째를 맞은 올해 성천상 수상자로 소록도에서 20년째 한센병 환자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있는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이 선정됐다. 1회(작년) 성천상은 벨기에 출신 배현정(마리 헬렌 브라쇠르) 전진상의원 원장이 받았다. 배 원장은 시흥동 판자촌에서 40여년 동안 저소득층에 인술을 베풀었다. 제2회 성천상 시상식은 오는 2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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