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립현대미술관서 개막
뉴미디어ㆍ건축공학 등 다양한 장르
국내외 15명 작가 작품 11점 전시, 수학 주제로 한 영화 상영도
100여개국 5,000여명의 수학자가 서울에 모이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마련한 특별전 ‘매트릭스’가 대회 개막 전날인 12일부터 관객을 맞는다.
‘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전시는 영원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수학자의 열정과,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인 심연을 들여다보며 다른 종류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힘이 서로 통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 삶에 내재한 수학적 사고와 현상을 예술가들의 눈으로 풀어낸 작품을 모았다. 그림, 조각, 디자인, 뉴미디어, 사운드, 건축공학,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국내외 작가 15명의 작품 11점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입구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베르나르 브네의 대형 벽화는 수학기호와 방정식으로 가득하다. 의미를 배제한 채 순수한 이미지로 등장해 화폭을 가득 메운 기호들이 가독성 너머에 숨겨진 것들을 생각케 한다.
디자인 듀오 슬기와민의 ‘1997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은 수능 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험으로 악명 높은 97년 수능 수학 문제를 작가 나름대로 풀이한 시각적 답안지다. “초중고 12년에 걸친 수학 교육의 가치가 수능 시험 100분 만에 단 30문항으로 장렬히 표현된다는 사실에 어떤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작가 노트가 붙어 있다. 각 문항에서 시각적 개념적으로 흥미로운 단서를 찾아 변형하고 재구성한 도형 디자인 패널 30개로 이뤄진 작품이다.
데이터 시각화 앱을 개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랜덤웍스(민세희+김성훈)는 서울시의 최근 100일간 사업 지출 데이터를 날짜별로 매핑해 지형도를 만들었다. 서울시가 각종 사업을 하면서 매일 만들어내는 숫자들을 시각화함으로써 서울의 현재와 이슈를 보여준다.
수학자들의 기쁨과 고뇌, 열정을 전하는 작품도 있다. 전시장에 틀어 놓은 다큐멘터리 영화 ‘수학의 색(Color of Math)’은 수학자이기도 한 영화감독 에카테리나 에레멘코의 작품이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의 2009년 수상자 세드릭 빌라니 등 여러 명의 수학자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수학자들은 이해 받기 어렵죠. 아무도 이해 안 해 줘요. 친구도, 가족도, 아내도요. 쉽지 않아요. 볼츠만은 자살했고, 마르크 카츠는 전쟁 중 가족이 몰살당했죠. 튜링은 동성애자란 이유로 처벌을 받은 후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내시는 30년 동안이나 정신질환과 싸웠죠. 근데 맥스웰은 괜찮았어요. 숙명은 아니라는 거죠.”
빌라니 교수와 에레멘코 감독은 23일 미술관에서 만나 관객들 앞에서 공개 대화를 나눈다. 이 외에 수학을 주제로 한 영화 2편이 서울관 영화관에서 전시 기간 중 상영될 예정이다.
일러스트 작가 송희진이 만든 수학자의 방 ‘진리의 성’은 수학자 최재경(고등과학원 교수)이 30여 년 간 쓴 수학 문제풀이 노트 11권에 빼곡히 들어찬 수학 공식과 낙서로 벽을 꾸미고 실제 노트들을 전시했다. 실패의 흔적이 가득한 노트, 최 교수가 틈틈이 지은 감성적인 시와 에세이에서 수학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1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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