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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제4대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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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제4대 대통령 당선

입력
2014.08.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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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8월 13일 윤보선대통령이 국회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0년 8월 13일 윤보선대통령이 국회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2공화국의 짧았던 역사만큼 윤보선 대통령의 임기도 잠깐이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을 일거에 무너뜨린 4.19 혁명 이후 정권을 맡을 세력은 민주당이 유일했다. 55년, 집권 자유당이 사사오입개헌을 통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자 이에 반발한 야당들은 통합을 모색했고 신익희가 이끌던 대한민주당과 민주국민당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신파와 구파로 나뉜 정치세력은 사사건건 충돌하기 일쑤였다.

그 해 7월 29일 치러진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민주당은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을 거머쥐며 80%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지만 의석 분포는 신파와 구파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팽팽한 구도였다. 두 파의 갈등은 결국 국무총리 선출에서 표출됐다.

1960년 8월 12일, 민주당 신?구파는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투에 들어갔다. 구파는 대통령에 윤보선, 총리에 김도연을 밀어 두 자리를 독점한다는 전략을 세웠고 이에 맞선 신파는 대통령은 넘겨주되 총리만큼은 장면을 내세우며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래저래 윤보선의 대통령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은 재석 259명 중 208표를 얻어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두 번째 대통령에 당선됐다. 백낙준 참의원의장의 당선 발표로 대통령에 취임한 윤보선은 며칠 후 구파의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했지만 부결됐고 결국 신파의 장면이 총리 인준에 성공함으로써 신·구파의 갈등 속에 제2공화국은 시작됐다.

1897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해위 윤보선은 1913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게이오의숙 의학부에서 공부했고 여운형을 따라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와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귀국 후 숙부 윤치영과 한민당 창당에 참여했고 48년 초대 서울시장과 이듬해 상공부장관을 맡으며 황금가도를 달렸다.

한때 이승만과 같은 노선을 걸었지만 52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강압적으로 통과되자 이에 반대하며 야당의 길로 들어섰고 지도자의 위치를 구축하던 시기 4.19혁명을 맞아 새롭게 시작된 내각책임제 하에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61년 5월 16일 육군소장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는 그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렸으니 불과 9개월의 짧은 권력이었다.

63년, 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그는 15만 표의 아까운 표차로 낙선한 후 야당에서 정치활동을 이어가다 1990년 서울 안국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저서로 ‘구국의 가시밭길’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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