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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민주주의보다 경제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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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민주주의보다 경제 택했다

입력
2014.08.1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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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 결집에 野 분열 반사이익, 대통령 중심제 전환 헌법개정 탄력

반대 세력 포용하는 통합정치, 이웃국가와 틀어진 관계 회복 등 숙제도 산적

10일 실시된 터키의 첫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총리가 아내와 함께 선거 당일 집권 정의개발당(AKP) 앙카라 당사의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10일 실시된 터키의 첫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총리가 아내와 함께 선거 당일 집권 정의개발당(AKP) 앙카라 당사의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지난 10일 실시된 터키 대선에서 당초 예상대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총리가 51.7%의 득표율로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터키 공화국 91년 역사에서 첫 직선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이원집정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터키는 지금까지 군통수권과 외교권을 가진 대통령은 국회 제적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해왔다. 다만 내각구성권을 갖고 있는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다수당 대표가 맡아 국정운영을 책임져 왔다. 에르도안은 2003년 선거압승으로 총리가 된 후 12년째 집권해 왔다. 총리의 네 번째 연임을 금지한 규정에 따라 이번에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출마한 것이다.

변화보다는 안정 추구한 유권자들

에르도안이 그 동안 부패스캔들과 독선적 국정운영, 반대언론에 대한 공공연한 탄압, 유튜브와 페이스북 차단 같은 비민주적 정책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45%에 달하는 지지계층의 효과적 결집에 성공했고, 집권능력이 부족한 분열된 야당의 존재로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누렸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집권을 했음에도 야당인 공화인민당이 보여준 지나친 반이슬람적 세속주의와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불신은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가 됐다. 유권자들이 약간의 결점은 있더라도 안정적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검증된 지도자를 선택하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선거는 출발부터 불공정 시비로 신뢰도가 크게 흔들렸다. 무엇보다 현직 총리가 끝까지 사임하지 않고 기존 조직과 공권력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한 반면에 학자로서 외교관 출신인 야당 단일 후보 이흐산 에크멜레딘은 지명도가 거의 없는 정치 신인이었다. 전례 없는 언론 통제 속에서 대통령 당선 후의 불이익을 고려하여 거의 전 언론이 에르도안 후보 지지성향을 보였다. 언론 홍보나 출연에서 두 후보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특히 에크멜레딘 교수는 너무 귀족적이고 고결한 이미지 때문에 서민들의 표심을 움직이지 못했다. 또 민족주의 성향으로 최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표를 거의 얻지 못한 것도 결정적인 패인이 됐다. 그 결과 제3후보로 출마한 쿠르드 정당 대표 셀라하틴이 오히려 9.8%를 득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야당세력이 침몰한 상태에서 당분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서방 언론들도 ‘21세기의 새로운 술탄’이 탄생했다며 그의 전횡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반대언론을 탄압하고 부패 스캔들을 파헤친 경찰들을 대거 해고하거나 체포했다. 그가 군부와 사법부까지 통제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진정한 민주주의와 건전한 비판이 뿌리를 내릴지는 의문이다. 이번 직선제 대통령 당선으로 의원내각제를 포기하고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하려는 헌법개정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분열된 국론 추스르기 시급

그러나 선거 전략과 대통령의 정책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오랜 정치적 야망을 달성한 시점에서, 오히려 분열된 국론을 추스르는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직후 그의 첫 연설에서 강조한 단어는 화합과 결속이었다.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무엇보다 대외관계 악화와 외교적 실책을 회복하는 문제가 급선무이다.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다가 새로 집권한 이집트 군부 정권과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예측하며 반군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정책을 펴고 있으나 시리아 정권은 5년째 든든하게 버티면서 터키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더욱이 터키로 받아들인 수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터키사회와 경제를 흔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선거기간 중 반이스라엘 정서를 가진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국가테러나 히틀러의 민간인 학살에 비유함으로써 이스라엘 정부와 극도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선거 후에도 이런 발언이 계속된다면 이스라엘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리버만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발언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강화 노선에 대한 국내외의 불만과 우려가 적지 않다. 90여 년간 터키 헌법정신으로 지켜 온 국부 케말 아타투르크의 정교분리와 세속주의 철학을 훼손시킨다면, 국내 진보 계층이나 서방과 불필요한 마찰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계층인 대도시의 보수적 이슬람층과 농촌계층에 머물지 않고, 쿠르드, 알레비, 벡타쉬 같은 종파적-종족적 소수세력과 세속주의를 천명하는 지식인과 청년층을 끌어안는 통합정치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다. 아랍민주화 시위 이후 새로운 정치모델로 각광받던 터키의 조화로운 민주주의 회복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이슬람 문화를 바탕에 두면서도 서구와 협력하고 공존하면서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합리적인 대서방 정책의 복원 등도 향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밖에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 이란, 시리아, 이라크 같은 이웃 국가들과의 협력적 공생관계 구축도 에르도안 새 대통령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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