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비용 투자한 지방 도시들 입주 기업·주민들 없어 애태워
도시 주택 값 3개월 연속 하락세… 투자 귀재도 부동산 줄줄이 매각
지난 1일 중국 베이징(北京)시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1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한 톈진(天津)시의 바오디원취안청.
요금소 바로 앞 100m 지점엔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하게 하는 초대형 호화 석조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아시아 최대의 별장 단지’로 불리는 ‘징진신청’(京津新城ㆍ징진시티)의 정문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황금색 마차 조각상이 인사를 건넸다. 그 뒤로 서구식 복층 단독 빌라 건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좀 더 들어가니 유럽의 고성 같은 호텔과 골프장, 온천도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단지 안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4차로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길가의 상가도 입주한 곳이 드물었다. 자세히 보니 빌라도 오랫동안 방치된 게 대부분이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인적이 끊기자 아예 잡초들이 길 한복판까지 점령한 곳도 있었다. 현재 완공된 3,000여채의 집 가운데 실제 입주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이곳 개발상은 당초 260㎢의 부지 위에 8,000여채를 지으려고 했다. 베이징에서 100㎞, 텐진에선 50㎞ 거리인 만큼 수요가 충분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회사나 공장이 없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부대 시설 등이 미비하며 대중교통 접근성도 떨어지자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다. 현재 주변은 온통 옥수수 밭이다.
대형 샹들리에 아래 징진신청 전체 모형도를 꾸며 놓은 분양사무실로 들어가자 집을 사러 온 이보다 직원들이 더 많았다. 전자 게시판엔 ‘방 3개, 거실 2개, 면적 200㎡, 가격 195만위안(3억3,000만원), 아직 판매되지 않음’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위치별 유형별 가격이 쭉 나열되어 있었지만 하나같이 물량이 남아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 한 경비원은 “집주인들이 사 놓기만 하고 살지 않는 집들이 대부분”이라며 “낮엔 견딜만한데 밤엔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대의 별장 단지’는 이제 ‘유령 도시’의 대명사가 됐다.
갈수록 늘어나는 유령도시들
톈진시 빈하이신(濱海新)구의 위자푸(于家堡)도 삼면이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고층 건물들이 속속 올라가고 있어 겉모습은 뉴욕 맨해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면 완공 후에도 비어있거나 아예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적지 않다. 톈진시는 이 곳을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무려 2,000억위안(33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입주 기업들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방은 더 심하다.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어얼둬쓰시 캉바스(康巴什)와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 칭수이허(?水河), 허난(河南)성의 정저우(鄭州)시 정둥신(鄭東新)구와 허비(鶴壁), 장쑤(江蘇)성의 전장(鎭江)시 단투(丹徒), 후베이(湖北)성의 스옌(十堰), 윈난(雲南)성의 쿤밍(昆明)시 청궁(呈貢) 등이 모두 유령 도시로 불린다.
늘어나는 유령도시들은 중국 부동산 거품 붕괴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그 동안 오르기만 하던 중국 부동산 가격은 최근 상승폭이 점점 둔화하며 아예 하락세로 돌아서는 곳이 많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0대 도시 중 신규주택 가격이 상승(전월 대비)한 곳은 지난 1월 62곳에서 6월에는 8곳으로 줄었다. 반면 신규주택 가격이 하락한 곳은 1월 6곳에서 6월 55곳으로 늘어났다. 기존 주택의 경우도 가격이 상승한 곳은 1월 48곳에서 6월에는 7곳으로 줄었다. 반면 가격이 하락한 곳은 13곳에서 52곳으로 증가했다. 수도 베이징조차 6월 기존 주택 가격 지수가 전월(100) 대비 하락(98.7)하는 형편이다. 중국지수(指數)연구원은 최근 중국 100대 도시의 7월 신규주택 평균가격이 ㎡당 1만835위안(181만원)으로 전월보다 0.81% 하락했다고 밝혔다. 도시지역 집값이 3개월 연속 하락세다.
수치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끄는 건 아시아 최고 부호로 꼽히는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長江)그룹 회장의 행보다. 그는 올 들어 광저우(廣州) 메트로폴리탄 플라자, 상하이(上海) 오리엔탈 금융센터, 난징(南京) 국제금융센터(IFC), 베이징 잉커중신(盈科中心) 빌딩 등 중국 본토 부동산을 모두 매각했다. 지난해부터 그가 부동산을 팔아 챙긴 금액은 4조원도 넘는다. 투자의 귀재인 그가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내다 보고 미리 선수를 친 것이란 게 시장의 눈치다.
부동산 거품 붕괴? 단기 조정?
이에 따라 ‘중국 부동산 거품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우려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부동산 가격이 2011년과 비교할 때 25%나 떨어졌다는 등 부동산 경기의 침체가 중국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지적하는 외신 보도들도 드물지 않다. 중국 지방 정부의 주 수입원이 토지 매각 대금이고,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부동산 부문의 기여도가 15%나 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될 경우 중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건 기우가 아니다.
그러나 반론도 적잖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중심으로 공산당 제5세대 지도부가 신형 도시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고 이에 따라 2020년까지 2억명의 인구가 새롭게 도시에 유입될 것이므로 부동산 시장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연 평균 7~8%의 경제 성장률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부동산만 거꾸로 가긴 힘든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가시화할 경우 중국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이 시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 및 검소한 분위기 강조, 대출 규제 등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나 일본의 장기 부동산 침체가 중국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현재로는 적다. 기준이자율을 1%까지 떨어뜨리면서 사실상 무일푼으로 집을 살 수 있던 미국과 달리 중국은 1주택자의 경우 초기 납입금 비율이 30%나 되고 2주택자는 60%로 더 높다. 일본은 도시화율이 76%에 달했을 때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반면 중국의 도시화율은 아직 53%에 불과하다. 친훙(秦虹) 주택도시농촌건설부 정책연구센터 주임도 한 포럼에서 “미국이나 일본식 부동산 거품 붕괴 상황이 중국에서 벌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재 중국 부동산 시장은 조정기를 거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저성장ㆍ양극화는 불가피
그러나 중국 부동산 시장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동안의 높은 성장세가 마무리되면서 저성장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단기 하락과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니펑페이(倪鵬飛) 중국사회과학원 도시경쟁력연구센터 주임은 인민일보에 “중국 부동산 시장은 그 동안의 폭리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이제 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며 “시장이 저성장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의 양극화도 새로운 현상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여전히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곳은 집값이 아직 견고한 데 비해 수급이 역전돼 공급 과잉이 시작된 지역의 집값은 떨어지고 있다. 베이징 내에서도 학군이 좋은 하이뎬구의 경우 방 3개 160㎡의 아파트 가격은 850만위안(14억원)일 정도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완커(萬科)의 주가는 올해 들어 20% 이상 올랐다. 시장 상황이 악화하자 투자자들이 좀 더 안정적인 대형 업체를 선호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중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톈진=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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