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인준으로 독선ㆍ불통, 종전재단 복귀 ‘불발’
"종전재단의 법적 권한은 3월 해임된 이사들의 몫"
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 통해 전국 최고 모범대학으로
이달 22일 대구대 하계 졸업생들은 총장 직인이 찍힌 졸업장을 받는다. 대구대 영광학원 임시이사회가 최근 9개월간의 총장없는 대학시대를 청산하고 당선인인 홍덕률(57) 총장을 만장일치로 인준하면서 올초 빈 졸업장의 공백을 채우게 된 것이다. 홍 총장 인준의 의미는 1994년 총장직선제를 도입한 대구대의 첫 연임 총장 탄생이라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건강한 정이사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불통과 독선으로 얼룩진 종전재단의 경영복귀를 최종적으로 막아낸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4년 더 대구대를 짊어진 그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_길고 긴 9개월이었다. 임시이사회의 총장 인준으로 대구대는 제 궤도에 올랐다.
“교수회와 노동조합, 총학생회, 총동창회 등 사실상 대학의 모든 공식기구와 지역사회의 성원에 힘입어 가능했던 일이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 하루빨리 학사행정을 정상화해서 학생들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_총장으로 뽑히고도 평교수로 재직했는데.
“봄 학기에는 사회학과 교수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총장직을 다시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총장공석 기간 중 대학이 어려워지고, 대학정상화를 위해 힘쓰던 이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힘들었다.”
_대구대에 임시이사가 파견된 역사는 20년에 이른다. 대구대 사태의 본질과 의미는.
“대구대 사태는 상식과 정의, 지성을 지키려는 대학가족과 이를 위협하는 세력간 다툼이었다. 결국 자랑스런 대학구성원들과 함께 이를 지켜내면서 우리나라 대학사에 길이 남을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개인으로서나 대학으로서나 뜻깊은 영광의 시간이었다.”
_총장 인준 후에도 비방광고가 신문에 게재된 것을 봤다. 종전재단측과 관계설정을 어떻게 하나.
“대구대를 힘들게 한 인물들은 사실 대학 운영에 개입할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1994년 임시이사 파견 전의 이사들이다. 이에 따라 종전재단의 법적 권한은 이제 3월 해임된 이사들의 몫이다. 그 중 설립자 유족은 장손인 이근용 전 이사 뿐으로, 대학구성원 모두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냉각기를 가진 후 다른 설립자 유족들의 의견을 갖는 시간을 마련하겠지만 대학의 명예를 훼손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자세를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_대구대가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장 힘든 시절과 보람있었던 순간은.
“총장 공석기간 중 대학 경쟁력이 추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때 가장 안타까웠다. 지난해만 해도 교육역량강화사업비 전국 최고금액 획득, 산학협력 선도대학 지원사업비 전국 최고 금액 획득 등 여러 분야에서 전국 1위의 기록을 연달아 세울때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대구대 58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다 곤두박질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총장으로 인준받지 못하더라도 미련이 없었다. 이미 교수와 직원, 학생, 12만 동문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_대학이 제자리를 잡는 동안 학생들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 4년 재임의 청사진은.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미래의 행복을 잘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지난 4년간 추진해온 ‘학생이 행복한 대학’을 완성시키겠다. 학생 중심의 대학경영 패러다임, 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국 최고의 모범대학을 만들겠다.”
대구대는 1994년 학내분규 등 여파로 임시이사 체제로 돌입, 17년 만인 2011년 7월 정이사 체제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사간 이견과 공석 등으로 학내 현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서 5월말 다시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전준호기자 jhjun@hk.co.kr
●약력
대구대 교수
한국지역사회학회 회장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녹색경북21 회장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
경북도 평생교육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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