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T) 분야 공공기관에서 ‘정부 출연금’ 빼돌리기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는 공공기관 소속 연구원뿐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와 서울시 등 관련 공무원까지 가담했다. 검찰은 어제 12억 원의 정부 출연금을 횡령하고,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아 챙긴 미래부 산하 정보화진흥원(NIA) 연구원 강모 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앞서 지난 4일에도 가짜 회사를 세워 특정업체에 출연금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15억 원을 챙긴 미래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연구원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연구원들의 비리는 대단히 지능적이다. 연구원 강씨는 초등학교 동창 명의로 IT업체를 차린 뒤 NIA사업을 따낸 다른 업체들이 이 회사와 재하도급을 주도록 하는 수법으로 정부 돈을 빼돌렸고, 이를 정상거래처럼 위장하기 위해 세금도 냈다. 또 IT 관련 협회를 세워 놓고 업체들로부터 협회비 명목으로 돈을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챙긴 돈으로 오피스텔을 사거나 해외 골프여행을 가는 등 유흥비로 썼다. 더욱이 이들을 감독해야 할 미래부 사무관은 발주 사업을 NIA가 맡도록 해주겠다며 매년 1억 원씩을 강 연구원에게 요구해 800여 만원이 입금된 체크카드 두 장을 받았다. 서울시 7급 주무관도 서울시의 NIA사업과 관련해 IT업체로부터 돈을 챙겼다. 정부출연금을 매개로 미래부 공무원과 NIA연구원, IT업체 임원, 서울시 공무원으로 이어진 다단계 먹이사슬의 비리구조를 보여준다.
정부출연금은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렵거나 민간이 대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중요 국책사업에 대해 재정에서 지원해 주는 돈이다. 지원 대상 업체 선정은 형식상 외부 심사위원들이 맡지만 담당 공공기관 연구원들이 사업기획부터 수행업체 선정 등에 깊숙이 관여하게 마련이다. 또 기금의 적정 사용을 확인하는 정산 및 감사 업무도 이들이 총괄하고 있어 비리 소지가 크다. 출연금 횡령 사건이 거의 해마다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방송통신 융합이나 사물인터넷 등 첨단 IT분야의 특화기술은 업체 선정부터 사후 평가에 이르기까지, 소수 전문가들이 독점할 수밖에 없다. 이를 악용해 연구원들이 짜고 나눠 먹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풍조마저 퍼지고 있다니, 이를 근절하지 못할 경우 혈세 누수는 물론이고 국가의 미래 경쟁력마저 좀먹고 만다.
지금까지 드러난 IT관련 공공기관과 관련 업체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검찰은 전체 출연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확대, 이 기회에 세금 도둑질 행위를 뿌리뽑아야 한다. 정부도 지원금 사용 실태를 전면 점검하고 새로운 감독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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