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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목숨 바쳐 어떤 나라를 지키려는가

입력
2014.08.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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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이던 4월 8일 ‘중요사건보고’로 육군 28사단 윤모(20) 일병 구타사망 사건을 보고받았을 때, 사고종합대책본부를 꾸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면 어땠을까. 이후 수습과정도 계속 보고하도록 하면서, 그토록 장기간 가혹행위와 구타가 이어질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을 성찰하고 개선을 도모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사건을 수사한 군 검찰관이 중요한 사고 목격자인 김모 일병을 유족들과 못 만나게 막고, 법정 증언도 하지 않게 된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군인권센터가 “윤 일병 가슴에 생긴 멍은 심폐소생술로 생긴 것으로 하자”거나 “차라리 윤 일병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가해자들의 진술을 폭로하고 나서야 비로소 군 검찰이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는 뒷북도 막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지금 어딘가에서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또 다른 윤 일병을 구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는 인성교육이 안 된 탓이라 하고 누구는 학교폭력이 만연한 탓이라지만, 틀렸다. 군 내 가혹행위가 뿌리 뽑히지 않는 가장 큰 책임은 군 수뇌부에 있다. 김 실장이 사고 발생 초기 엽기적 가혹행위의 세세한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안 받았는지가 지금까지 논란이다. 하지만 이를 알았든 몰랐든,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국방부 차원의 사고종합대책본부를 꾸리도록 하고 있다. 가래침을 핥게 했다는 사실을 몰랐어도 구타 사망사건을 심각하게 여겼어야 옳다. 하지만 국방부 최고 수장은 훈령을 어기고, 사후 보고도 챙기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이 같은 최고 수뇌부의 잘못된 메시지는 각군의 고위, 중간 지휘관들에게 차례로 전파된다. 그 효력은 막강하다. ‘마음의 편지’ ‘생명의 전화’ 등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도입된 수많은 제도들이 이런 식으로 작동이 멈춰 있다. 내무반에선 다른 규율이 지배한다. 11일부터 한국일보가 연재하는 ‘군대, 적(敵)은 우리 안에 있다’ 시리즈에서 박모 일병은 군 문화 개선을 위한 소원수리를 냈다가 중대장으로부터 “내 등에 칼을 꽂았다”는 질책을 받고 집단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일 있었던 군 특별인권교육처럼 ‘휴일에 청소 시키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100번 강조한들 한번이라도 소원수리 접수자가 신원이 밝혀져 보복의 타깃이 되도록 방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군이 습관적으로 사고를 축소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그 밑바닥에는 ‘굼뜨고 뒤처지는 병사는 때려서라도 군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수뇌부의 인식이 깔려있을 것이다. 윤 일병 사건이 솔직한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이 바로 이 점이다. 구타와 괴롭힘을 ‘사람 만들려다 좀 과해서 불거진 사고’ 정도로 여기는 지휘관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훈련시간뿐만 아니라 일상과 내면까지 부하를 지배하려는 간부는 얼마나 많을까. 다만 윤 일병 사고야 도가 지나쳤다고 여기는 정도일 터인데, 세세한 내용까진 몰랐다는 김 실장의 변명이 여기에 닿아있다.

군대 안 간 여자가 뭘 아느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군인들이 생각하는 군인정신이란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어디까지 국가 수호라는 고귀한 명분에 복무하는 훈련이며 어디부터 동지를 적으로 만드는 행위인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폭력은 짧은 순간 사병들을 일사불란하게 만들겠지만 그 일사불란함으로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 회의해야 한다. 군은 결코 헌법 위에 있지 않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인간성의 가치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1969년 미국의 유명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페르미연구소의 초대 소장 로버트 윌슨은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는 실험장비인 입자가속기 건설을 놓고 의회에 서야 했다. 한 상원의원이 “입자가속기가 국가 방위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느냐”고 묻자 윌슨은 이렇게 답했다. “나라를 지키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가속기는 우리 조국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할 뿐입니다.” 우리 군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김희원 사회부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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