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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공습' 오바마, 뜨거운 감자 받아들었다

입력
2014.08.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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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사우스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 휴가길에 오르기에 앞서 전용 헬기 '마린 원'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사우스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 휴가길에 오르기에 앞서 전용 헬기 '마린 원'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요 며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6년 중 가장 적극적인 결정을 내린 것 같다. 국제사태에 우왕좌왕하며 군사옵션을 기피하던 그가 이라크 공습카드를 꺼낸 든 것이다. 물론 수니파 무장반군인 이슬람국가(IS)에 국한된 공습이긴 하지만, 전쟁을 종식시킨 평화의 지도자란 오바마의 유산을 날려버릴 카드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쟁 종식은 2009년 백악관 입성 때 오바마가 초당적 정치와 함께 내건 공약이었다.

오바마는 언제나 치적을 고민해온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오바마가 도박에 가까운 공습을 택한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라면 미국인 보호와, 제노사이드(대량학살) 방지, 두 가지가 이유다.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의 미국 영사관에는 바그다드에서 피신해 있던 미국 대사관 직원과 가족까지 머물고 있다. 아르빌이 무장반군 수중에 들어가면 2년 전 대사를 포함해 4명이 숨진 리비아 벵가지 사태의 악몽이 재연될 게 뻔하다. 이런 제2의 벵가지 우려보다 오마바를 움직인 것은 제노사이드였다고 한다. 이라크 북부 신자르에 고립된 4만여 소수종교 야지디파는 근 일주일째 반군의 추격을 받으며 아사하기 직전에 놓여 있다. 조로아스터교에 가까운 이 야지디파를 악마숭배 집단으로 규정한 반군은 남성을 모두 살해하겠다고 이미 공언, 제노사이드는 시간문제나 다름 없어 보였다.

미국은 과거에도 대량학살이란 인도주의적 위기를 군사력 동원의 이유로 삼았다. 2011년 리비아 사태 때도 무아마르 가다피 정부의 민간인 대량 살상을 막기 위해 공습을 감행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0년대 인종학살 방지를 위해 보스니아와 코소보를 공습한 바 있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미국에 대해 스스로 전능하며 인류를 구할 사명을 띤 공화국으로 여기고, 십자군처럼 소명을 실천하는 국제개입을 한다고 분석한다. 솔직히 미국적 가치에 보편성을 부여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는 그만한 게 없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연두교서에서 2차 대전 참전의 명분을 인간의 기본 자유 수호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나중에 세계 인권선언에 고스란히 반영돼 세계의 좌표가 됐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이번에도 오바마가 말하는 잣대가 같지 않고, 그 명분에 발목 잡히기 쉽다는 데 있다. 가까이 가자지구 사태만 봐도 오바마의 제노사이드 기준이 이현령비형령 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공격해 민간인이 대부분인 2,000명이 희생된 것은 분명 제노사이드라는 게 국제사회의 인식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 조치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비난도 못하고 있다. 그저 민간인 희생을 우려한다는 애매한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오바마의 잣대가 같지 않은 것은 2011년부터 내전에 빠져 16만명이 희생된 시리아 사태를 봐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번 이라크 공습은 정확히 1년 전 시리아 사태 때 오바마의 태도와 정반대다. 작년 9월 오바마는 3주에 걸쳐 시리아 공습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햄릿 이상의 고민을 했다. 그는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금지선을 넘은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공격하는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하다 뜬금없이 화학무기 폐기협상으로 갔다. 미국 대외정책이 모순과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다거나, 좋게 말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를 오간다는 것은 이번 오바마의 공습 명분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돌아보면 ‘이라크 자유작전’이라는 이름으로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전이 그리 오래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명분과 실리마저 잃은 그때의 좌절과 낭패, 경악이 오바마 정권을 탄생시켰다. 지금 이라크는 내전의 수렁에 놓여 있다. 이번에는 오바마가 그 뜨거운 감자를 받아든 것은 아닐까.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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