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서 카페 운영 강지형씨 부부 시복식 예물봉헌 가족으로 선정
20년째 아프리카 굶주림에 기부
오른손도 모르게 조용히 했는데
이젠 주변 번지게 드러내고 할래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교황님을 직접 뵐 수 있다니 이런 큰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건지 믿어지지 않아요.”
8일 서울 성북동 카페 '요셉의 커피나무'에서 만난 강지형(58), 김향신(55)씨 부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까이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다소 상기돼 있었다. 강씨 가족은 오는 16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서 교황에게 예물을 봉헌하는 가족으로 선정됐다. 지난 주 천주교 교구 측으로부터 선정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긴가민가했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1995년부터 20년째 아프리카 지역의 굶주린 사람들을 돕고 있다. 먼저 매일 카페의 첫 테이블 매상은 가난한 이들을 원조하는 가톨릭 기구 ‘카리타스’에 기부한다. 또 매달 첫 금요일 하루 매출액도 고스란히 굶주린 이들의 몫이 된다. 실제로 커피숍 정문에는 ‘오늘은 ○월○일 금요일입니다. 계산은 현금으로 부탁 드립니다. 오늘 수익금 전액은 기아 돕기에 사용됩니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예수님이 성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거든요. 그 일을 항상 기억하고 되새기자는 취지였습니다.” 또 2009년부터는 1년에 4번 커피숍 주차장에서 작은 벼룩시장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굶주린 이들을 위해 고스란히 쓰고 있다.
넉넉할 때만 나눔을 실천했던 건 아니다. 김씨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결혼 뒤 14번이나 이사를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때도 지금 보다 액수만 적었을 뿐 오히려 더 많이 나누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땀 흘려 번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도 강씨는 “하느님 몫으로 떼어놓는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쉬워요. 아예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닌 겁니다”라고 말했다.
예물 봉헌 가족으로 선정된 후 생활이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큰 딸 결혼식 때도 양복과 한복을 빌려 입을 정도로 근검절약이 배어 있던 강씨 부부는 이번 시복식을 위해 큰 마음 먹고 온 가족 한복을 새로 맞췄다.
사실 강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요셉의 커피나무'는 이미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름난 곳이다. 삼청공원 드라이브 코스를 끼고 있어 경치와 분위기도 좋지만 주인부부의 후덕함으로도 유명하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내리는 드립 커피의 깊은 맛과 향은 기본이다. 맛의 비결에 대해 강씨는 “손님 한 분 한 분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차와 음식을 낸다”고 했다. 카페 입구에는 ‘들어오는 분이 바로 그 분이시다’란 문구가 붙어 있는데, 실제 손님들은 “똑 같은 재료와 기구로 커피를 내리는데 직원들이 내린 것과 주인이 내리는 커피 맛이 다르다”고 말한다고 한다.
강씨 부부는 이제는 기부 활동을 ‘드러내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처음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조용히 하려 했는데 벼룩시장을 통해 막상 드러내고 하다보니 오히려 주변으로 번져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이 나눌수록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 진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며 활짝 웃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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