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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사랑으로 연대하라!

입력
2014.08.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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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추상적이면서 가장 구체적인 것이 사랑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랑은 그 태생부터 모순인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꿈꾼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보다 삶에서 의미와 기쁨이 충만한 것은 드물다. 세계 최고의 갑부 워런 버핏은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라고 압축적으로 말했다. 사랑은 삶의 심장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시리고 어두워서 사랑에 가장 열심이어야 할 젊은이들이 사랑을 포기하고 있다. 이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사랑을 포기하고 사랑을 상실한 삶보다, 젊음보다 아픈 게 있을까? 1997년 이후 계속해서 삶은 힘들고 거칠며 건조해졌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대다수가 1997년생이었다는 게 두고두고 마음에 얹힌 건 그 아이들이 시린 시절에 태어나 맵게 살다가 차가운 바다에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태어나자마자 맵고 시린 시절을 살아야 했던 그 아이들이 따뜻하고 행복한 시절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을까? 그래도 부모의 사랑은 아무리 힘들 때에도 그치거나 줄어들지 않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면 하는 바람뿐이다.

“논리보다 우선 살아야 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알게 되죠.”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렇게 말했다. 100일 넘도록 아직 차가운 바다에 갇힌 이들이 남아있고,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검은 장막으로 가려져 있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질량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물며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자식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부모의 그것은 더욱 절절할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구브타프 말러에게 연가곡집의 모티프를 제공한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그래서 내가 고개를 돌려 네 엄마를 바라볼 때면/엄마 얼굴을 먼저 쳐다보는 대신/난 네 귀여운 얼굴이 나타날 것 같은/그 곁, 문지방 뒤부터 보게 되는구나/늘 그랬듯 기쁨이 넘치는 밝은 얼굴로/네가 들어설 것 같아서 말이다, 내 귀여운 딸아.”

그 방문을 어찌 아무 두려움 없이 열 수 있을까. 사랑은 그 상대가 부재했을 때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자식 잃은 뤼케르트와 말러였기에 그 심정 절절이 느꼈을 것이다. 헤어진 연인의 사랑은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방전된 사랑은 충전할 수 있지만 세상 떠난 자식은 평생 가슴에 묻고 살며 그리워하기에 더 아리다. 그런 일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비극 막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그러기에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아이 잃고 평생 아리게 살아갈 어버이들의 짐 덜어주기 위해 제대로 매조지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대놓고 “누가 죽으라 그랬어?”라거나 "노숙자들처럼" 운운하며 삿대질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생각이 다르고 뜻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말이나 뜻이나 생각이 다를 수는 없다. 차가운 세상 힘겹게 살았던 젊은 꽃들에게 남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삶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연대이다. 누구나 극한의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이 보편성의 바탕이다. ‘어버이’나 ‘엄마’의 이름은 그런 보편성을 지닐 때 진정성과 힘을 발휘한다. 남은 우리가 제대로 사랑하고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들을 가르고 척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게 연대의 위대한 힘이다.

곧 방한할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을 기억하고 실천할 일이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단어는 ‘연대’입니다. 연대야말로 이 세계의 정신이 간절히 바라는 단어입니다.”

더 이상 자식 잃은 부모 힘들게 하지 말고, 사랑조차 해보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 희망조차 품지 못하게 하는 매정한 짓 멈춰야 한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뜻을 헤아리는 연대가 지금 우리의 몫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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