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폐색 때 나타나는 징후 없고 일시적 언어 장애 뇌진탕서 비롯
서건의 전모 지켜본 동료 병사 유가족들 면회 요청 계회적 방해
속옷 찢고 폭행ㆍ강제추행 정황, 軍은 사망시점 등 기존입장 고수
군인권센터는 7일 28사단 헌병대 수사기록 분석을 통해 윤모(20) 일병 폭행 사망 사건에서 불거진 사망원인과 시점, 군의 부실 수사 등에 대해 다양한 의혹을 쏟아냈다. 윤 일병의 직접적 사인은 당초 알려진 질식사가 아닌 구타에 따른 뇌손상 사망이어서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군 당국의 조직적 사건 축소ㆍ은폐가 병행돼 사망 진단부터 사후 대응, 가해자 기소까지 ‘총체적 부실 수사’로 귀결됐다는 주장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군 당국은 그 동안 윤 일병이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색으로 사망했다”고 밝혀 왔다. 냉동식품이 기도를 막아 산소 부족으로 심장이 멎었다는 것이다. 윤 일병 사체를 부검한 국방부조사본부과학수사연구소도 지난 4월 9일 감정서에서 “후두, 기관, 기관지에서 음식물이 관찰됐고, 직접적 사인이 될 만한 외상 및 질병이 관찰되지 않았다”며 ‘기도폐색성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윤 일병이 의식을 잃기까지 과정이 기도폐색 증상과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통상 급성 기도폐색 환자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 말을 할 수 없거나 피부가 새파랗게 변하는 징후가 나타나는데 윤 일병의 경우 전혀 그런 정황이 없었다는 것이다. 윤 일병은 가해 주범 이모(26) 병장에게 수차례 머리를 가격당한 뒤 “물을 마시고 싶다”며 가던 도중에 웅얼거리다 오줌을 싼 후 쓰러졌다. 계속된 폭력으로 먼저 의식을 잃어 기도가 막혀 사망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군인권센터는 윤 일병이 보인 일시적 언어장애 증상은 ‘외상성 뇌손상(뇌진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견이라고 강조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의식을 잃더라도 음식물을 삼키면 반사적으로 흡입이 될 수 있다”며 “흡인성 폐렴은 오히려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가해 병사들이 기본 인명구조술을 익힌 의무병인데도 ‘하임리히법’을 시행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하임리히법은 기도가 막혔을 때 환자를 뒤에서 안고 복부를 조여 체내 압력으로 이물질을 내뱉게 하는 응급처치법이다. 때문에 윤 일병이 이미 의식을 잃어 하임리히법을 실시할 수 없었던 상태였는지, 혹은 윤 일병의 사망을 바라고 가해자들이 의도적으로 방치한 ‘미필적 고의’가 아닌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홍창식 국방부 법무관리과장은 “부검 결과 윤 일병은 장기가 손상되고 기력이 쇠약해지면서 음식물을 토해낼 능력조차 없었다”며 “부검의도 부검 전 구타 정황이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살인죄 입증할 사망 시점 규명해야
군 검찰 공소장은 윤 일병이 4월 6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가 이튿날 숨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차 이송기관인 경기 연천군 보건의료원은 내원 당시 윤 일병을 ‘맥박과 호흡이 없는(no pulseㆍno respiration)’ 상태로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학적으로 ‘DOA(도착시 이미 사망)’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소장에는 윤 일병이 약 20여분 간 전문심폐소생술을 통해 일시적으로 호흡을 회복하고 7일 오후 사망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군 검찰은 윤 일병의 최종 사망 시점을 7일로 보고, 또 가해 병사들이 심정지 환자인 윤 일병에게 간단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는 이유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윤 일병이 전문 심폐소생술 뒤 호흡과 맥박이 돌아왔으므로 쇼크사로 죽었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은폐 의혹, 부실투성이 사후 수사
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6일 저녁 같은 부대의 김모 상병은 가해자 중 한 명인 지모(20) 상병을 만나 “윤 일병이 집단 구타를 당하다 기도가 막혀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 상병의 설득에도 지 상병이 “윤 일병이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며 사실 확인을 거부하자, 김 상병은 본부 포대장인 김모 중위에게 이런 내용을 제보했다.
그러나 김 중위는 제보를 받은 지 9시간이 지난 7일 오전에야 지휘통제실에 보고해 가해 병사들이 입을 맞출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건 당일 윤 일병이 국군양주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군의관이 타박상흔을 보고 동행한 인솔 간부에게 “구타 가혹행위가 있었냐”고 물었지만 “아니다”고 대답했고, 이에 대해서도 군 수사당국은 면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답변이라면 명백한 범죄 은닉행위인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사건의 전모를 지켜 본 의무대 입실환자 김모 일병의 증언 기회를 막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 일병 가족들은 다섯 차례의 헌병대 보고 때마다 김 일병 면회를 요청했으나, 군은 천식을 이유로 거부했다. 심지어 6월 27일 2차 공판 뒤 군 검찰관은 “김 일병은 의병전역을 해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내려가 증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 측은 “군 당국이 애초 김 일병과 윤 일병 가족의 만남을 계획적으로 방해한 것”이라며 “보강조사가 아닌 전면 재수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강제 추행, 절도 등 공소장에 빠져
군 수사기록에는 공소장에 누락된 강제추행, 성매매 등 가해자들의 추가 가혹행위와 비위 혐의가 대거 포함돼 있다. 가해자 이모(22) 상병은 헌병대 조사과정에서 “사건 당일인 6일 0시쯤 이 병장이 윤 일병을 폭행하면서 속옷인 런닝셔츠과 팬티를 찢으며 다섯 차례 정도 폭행했고, 속옷을 찢고 갈아입히기를 반복했다”고 진술했다. 군 검찰은 지난 5일 공소장에 가해 병사들이 윤 일병에게 강제로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바르게 한 사실을 추가했으나 이 부분은 빠졌다.
절도 의혹도 제기됐다. 다른 가해자인 하모(22) 병장은 이 병장이 윤 일병으로부터 “너 앞으로 잘못하면 신용카드를 쓰겠다”며 봉급 카드인 나라사랑카드를 받았다고 군 검찰에 진술했다. 유족에게 인계된 유류물품 인수증에는 이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으나, 군 검찰은 실제 카드 사용 여부 등은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휴가를 이용해 안마시술소에서 불법 성매매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모(23) 하사와 이 병장, 하 병장은 지난 3월 경남 창원에서 만나 이 병장이 “창원은 유흥업소가 발달했다”며 성매매를 제의하자 51만원을 지불하고 성관계를 가졌다. 군인권센터는 유 하사가 이 병장에게 보낸 계좌 입출금 내역 사본을 공개하고 “가해자들 스스로 업소명과 성매매 여성의 인상착의까지 명확히 진술하고 있다”며 군 검찰의 수사 부실을 질타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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