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부대 정밀진단 지시 후에도 윤 일병 사건은 거론조차 안 돼
장관에 첫 보고한 국방부 조사본부 후속 보고 왜 안 했는지도 의문
군 수뇌부가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을 축소ㆍ은폐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분명한 책임선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사의를 표명한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 모두 “최초 보고 이후 수사결과에 대한 추가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발뺌하고 있어 의혹만 커지고 있다.
육군총장 참모진이 중간에 개입했나
군에서 사건이 터지면 보고 체계가 크게 둘로 나뉜다는 것이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번 사건과 같이 병영관리 소홀로 발생한 행정사고의 경우 해당부대 헌병대와 군 검찰이 각각 육군본부의 헌병실장과 법무실장에게 조사결과를 보고하면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다시 참모총장에게 보고가 이뤄진다. 다만 인명을 앗아간 중요사건의 경우에는 국방부 조사본부나 인사참모를 통해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면 군 본연의 임무인 군사작전이나 경계태세와 관련된 사고의 경우에는 지휘체계인 사단-군단-군사령부를 거쳐 육군본부와 합동참모본부, 국방부로 보고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작전상황이 아니었던 만큼 당시 장관에게는 국방부 조사본부와 인사복지실장이 최초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방부는 “육군에서 추가 수사결과를 국방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당시 장관을 엄호하고 있다. 국방부 설명에 따르면 헌병대와 군 검찰의 추후 수사 결과로 드러난 부대원들의 엽기적인 가혹행위에 대해 당시 장관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어 “28사단 헌병대와 군 검찰이 수사 진행상황과 결과를 지휘 라인을 통해 보고 했지만 이를 종합하는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선에서 보고가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당시 장관은 물론 육군총장에게도 보고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사퇴한 권 전 총장도 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윤 일병이 병원에 실려간 4월 7일의 상황은 인지했다”면서도 “기소 되고 난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설명은 보고누락의 모든 책임을 육군본부의 지휘계통에 있는 참모진이 져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육군 지휘부가 모여 대책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심각했던 사안이었는데도 육군총장이 수사 결과를 몰랐다는 대목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전군 지휘 내린 당시 장관이 엽기 가혹행위는 깜깜?
당시 김관진 장관은 윤 일병 사망 뒷날인 8일 두 차례 서면 및 대면보고를 받은 뒤 일절 추후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국방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사건 조사 또한 육군 몫이었기 때문에 국방부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연히 국방부 참모진을 통한 장관 보고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후 28사단 헌병대는 4월15일 부대원들의 엽기 가혹행위를 최종적으로 밝혀냈다. 4월 21일 연대장 이하 16명이 보직해임 등 징계 처분도 뒤따랐다.
특이한 대목은 당시 장관이 4월 11일 부대 정밀진단을 지시하고 5월 9일 각군 참모총장으로부터 결과를 보고 받는 와중에 윤 일병 사건이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육군총장이 28사단 지휘관을 무더기로 징계처리 했지만 이 때까지도 엽기 가혹행위에 대해 몰랐다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또 인권위 관계자들이 4월 14일부터 이틀간 사건 현장을 방문해 조사를 벌일 정도로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육군총장이나 장관이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대목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최초 장관 보고에 나서는 등 처음부터 관여하고도 보고계통에서 사라진 점도 의심스럽다. 헌병 관계자는 “장관과 총장이 직접 대책회의를 열고 전군 부대진단을 할 정도의 사건이면 조사본부도 28사단을 통해 일찌감치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왜 장관에게 후속 보고를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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