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형의 감염병(전염병)을 일컬어 흔히 괴질(怪疾)이라 한다. 원인이나 증상이 기존의 질병과 다른 행태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법’에서 4군 감염병은 콜레라 등 이름이 적시된 1~3군과 달리 정의만 돼 있다.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는 감염병 또는 국내 유입이 우려 되는 해외유행 감염병.’ 괴질로 불릴만하다. 원인이나 전파경로가 불확실하고 치료제가 없는 괴질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중세 흑사병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람과 물건의 이동을 차단하는 격리(Quarantine)다.
▦ 2003년 지구촌을 휘몰아쳤던 사스(SARSㆍ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도 원인이나 전파경로가 규명되지 않아 한동안 괴질로 불렸다. 빠른 확산과 50%가 넘는 치사율로 국민의 공포감도 극대화해 보건당국이 특별히 괴질이란 표현을 자제할 것을 언론에 요청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외국인 감염자가 투숙한 홍콩의 한 호텔에서 시작해 단시간에 세계로 번졌고, 중국에서는 대확산이 일어났다. 놀란 우리 보건당국은 국제공항, 항구마다 검역을 시행, 감기 증상을 보이는 승객들을 바로 격리 조치했다.
▦ 문제는 법령 미비로 1, 3군 감염병 환자와 달리 4군 감염병 환자나 의심환자를 강제 격리할 근거가 없었다는 데 있다. 중국에서 입국한 내국인 사업가가 공항 검역에서 의심환자로 판정을 받았지만 사업을 이유로 함부로 돌아다니는 위험천만한 일을 벌이자 보건당국이 경찰력을 동원, 한동안 강제 격리했다. 초법적 조치였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4종 감염병 환자나 의심환자에 대한 강제 격리 근거를 마련한 것은 그로부터 4개월 뒤인 2003년 8월이다.
▦ 에볼라 바이러스의 아프리카 확산으로 국내에서 아프리카인 입국 제한 논란이 있었지만 증상이 없는 사람들의 입국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만약 에볼라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사스 유행 당시 중동 등 일부 국가는 중국인 입국을 제한했다. 실험 단계인 에볼라 치료약 ‘지맵(ZMapp)’은 어떤가. 미국 보건당국은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지맵의 투약을 자국민 환자에게 승인했지만 우리 약사법상 ‘동정적 사용’은 임상시험 단계에서나 가능한 데 말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공동선, 법의 한계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괴질의 세계화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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