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면 잊혀진다더니, 요즘 기획재정부에선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지우기가 한창입니다. 강력한 실세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등장으로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은 발붙일 곳이 없나 봅니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둘을 ‘헌’(현 전 부총리의 성에 빗댐) 부총리, ‘세’(권세 勢) 부총리로 나눠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 세제 업무가 1차관 산하로 돌아간 게 대표적입니다. 현 전 부총리가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세제와 예산을 2차관 업무로 통합한 지 1년 5개월 만입니다. 현 전 부총리가 취임 직후 단행한 조직 개편이 원상복구 되는 셈이죠.
기재부의 공식 설명은 본디 세제 업무는 왔다 갔다 해서 어느 쪽에 주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인,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번 돈(세제)을 아내가 관리(예산)하든, 남편이 수입과 지출을 모두 관리하든 살림살이만 잘 챙기면 된다는 얘기죠. 게다가 국회가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설화함에 따라 2차관이 예산과 세제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선 “업무 정상화”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전통적으로 세제 업무는 재무부에 속해왔고, 업무 총괄도 1차관이 맡았다는 것이죠.
현 전 부총리가 임기 중 그나마 잘했다고 평가 받는 공공기관 개혁도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현 전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일갈하며,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공공기관 개혁을 이끌어왔는데요.
최 부총리는 공공기관의 ‘작은 파티’ 정도는 인정하려나 봅니다. 장부상 여유가 생긴 부채감축 분으로 묶어뒀던 투자도 할 수 있게 하고, 노동조합과의 대화 창구도 열어놓는다고 하네요. 공공기관에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고 하소연하는 모양인데, 당연히 수장이 바뀌었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겠죠.
퇴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구관을 그새 싹 잊을까요. ‘최경환 효과’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시장에선 ‘세’ 부총리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선 10년 묵은 체증으로 여겨지던 기재부의 고위직 인사 적체를 단번에, 취임 며칠 만에, 그것도 기재부에 유리하게 이끌어낸 최 부총리의 위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국장급 인사조차 제대로 풀지 못한 구관이 명관일 수 없다는 얘기죠.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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