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중국 윈난성 자오퉁시 루뎬현에 강도 6.5의 지진이 발생하여 현재까지 3,000명에 육박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중국의 윈난성과 쓰촨성 지역은 과거 큰 지진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그간 이들 지역에서 지진에 따른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하면서 중국정부와 시민의식이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72시간 골드타임 중시와 중국 지도부의 헌신이다. 2008년 5월 발생한 쓰촨지진은 사망자 수만 7만 명에 가까웠던 그야말로 대재난이었다. 당시 원쟈바오 총리는 현지에 머물며 구호활동을 진두지휘하던 중 인명구조의 골드타임인 72시간 내에 인민해방군을 투입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군부에 호소하였다.
후진타오 주석은 현지에서 연설을 하던 중 여진이 발생하였다. 여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온몸이 흔들렸지만 그는 대피하지 않고 끝까지 주민들을 향한 연설을 마쳤다. 후 주석의 용기와 원 총리의 진정성에 정부로 향하던 중국인들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이번에도 리커창 총리는 끊어진 길로 인해 5km를 걸어 들어가 현장을 이끌고 있다.
쓰촨 대지진이 일어났던 해 2월 한국에서는 숭례문 방화 사건이 일어났었다. 지난 4월에는 기울어진 세월호의 모습이 처음 보도되었다. 두 사건 모두 정부가 나섰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안심하였고 문제가 해결되리라 보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숭례문이 붕괴되는 과정과 침몰하는 세월호를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어서 발생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게 만들었고 세월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불신은 아직도 망령처럼 우리사회를 떠돌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 정부에 책임을 묻고 불신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부와 위정자들이 변하고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시작할까? 비슷한 사건을 계속해서 경험한 결과에 따르면 ‘No'이다.
결국 열쇠는 우리들 자신이 변할 수 있는 가였다. 국민들 자체의 의식이 달라지고, 문화가 바뀌고, 행동이 변하면 그 뒤에야 결국 거기에 걸맞은 정부와 지도자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최근 밝혀진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과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을 보자. 이 두 사건은 정부의 군과 교육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의 소홀에도 그 책임이 분명히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 우리 자신들의 문제에 닿아있다. 폭력적 병영문화와 피해 여학생의 사투리 사용으로 인한 학생들의 ‘왕따’ 현상이 핵심 원인중의 하나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군 내에 남아있는 식민지 시절 일본 군국주의 군대문화와 일본의 ‘이지메’ 현상이 전파된 데 기인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독도 문제로 민족주의적 반감을 나타내는 한국사회가 굳이 일본의 전근대적 군의 잔재를 보유하고 ‘이지메’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일본은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두렵다.
2007년 4월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인 1.5 세대 이민자 고 조승희씨가 총 61명의 사상자를 내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미국 사회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한편 가해자 조씨의 고독과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지 못했던 점에도 눈물을 보였다. 미국 언론과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보이는 지나친 자책감에 오히려 의문을 표하며 이는 미국사회의 문제라고 말하였다. 지진현장에서 중국 정부와 지도자들 뒤에는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들, 오성홍기 아래서 자진해서 헌혈하고 구호물품을 모으던 수많은 중국인민들이 있었고 이들은 오히려 중국의 정부와 지도자들을 이끄는 든든한 받침이자 무서운 감시자였다.
진정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하나의 훌륭한 정부 또는 한 명의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들의 변화에서 나온다. 역사 속에 쓰러져간 많은 혁명가와 개혁가들은 변화를 만들어낸 성공한 지도자들에 비해 능력이 떨어져서 실패를 하였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사회가 이들의 생각을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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