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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와 인권

입력
2014.08.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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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가 지난 4일부터 유엔 여성기구(UN Womem)와 공동으로 개최한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에 나이지리아 학생들의 참가를 막아 파문이 일고 있다. 행사 개막을 앞두고 전해진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바이러스병 확산 우려 때문이다.

덕성여대도 고민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초청해놓은 이들을 막으려니 안 됐고, 오라고 하면 불안해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린 이 대학의 결론은 ‘초청을 정중히 철회’하는 것이었다.

감염 여부를 잘 검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대학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잠복기여서 발병이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들의 입국을 우려하는 기자도 있더라”고 답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말이냐고 되묻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감염 됐든 안 됐든 나이지리아 학생이 참가해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행사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듯 했다.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덕성여대 학생의 3분의 2 이상이 개막행사에 아예 오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짐작하건대 몹쓸 역병이 발생한 아프리카의 학생들과 한 자리에 있는 게 학생 스스로 내키지 않았거나 부모가 못 가게 했을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은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언론에서 보도한 전문가의 말을 옮겨 보겠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기독교방송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병지역에서) 국내에 들어오는 분들이 있다면 검역을 통해서 발열감시 등을 진행하는데 에볼라가 다행스러운 것 중 하나는 증상이 없을 때는 전파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무증상일 경우는 안심해도 되고 일단 증상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체액, 주로 혈액에 노출돼야만 감염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감염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발병국) 현지 공항에서는 출국하는 사람들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협조로 검역 및 스크리닝을 하고 증상이 있는 분들은 일단 나오지를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후 나오시는 분들의 경우 일단 3개국(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 대해서는 국제행사 출석 자제 같은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경제적 이유, 외교상의 문제 또 어느 나라도 아직 그런 식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6일 WHO의 긴급대책 회의 후 판단할 예정입니다.”

게다가 나이지리아는 각국이 여행자제 경보를 내린 3개국과 몇 개 나라 건너에 있다. 덕성여대가 나이지리아 학생 초청 철회를 결정할 즈음 WHO가 보고한 나이지리아 상황은 사망자 한 명이었다. 나이지리아에서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쓰러져 격리 치료 받던 라이베리아 사람이다. WHO의 지난 4일 최신 보고에서는 그 뒤 나이지리아에서 네 명의 에볼라 발병이 있었지만 아직 확정환자는 없다. 이들 중 세 명은 숨진 라이베리아인을 치료하던 의사 등 의료 관계자이고 나머지 한 명은 주요 발병국 기니에서 나이지리아로 여행 온 사람이다.

덕성여대 행사는 ‘양성 평등’ 등 전세계 여성 인권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뜻 깊은 국제행사임에 틀림 없다. 나이지리아 학생 몇이 오는 바람에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행사가 차질 빚을까 대학 당국은 조마조마했을 것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결정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다. 한국행의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이지리아 학생들은 그들의 초청이 철회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까. 설사 그들이 와서 행사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면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행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들에게 한국 사정을 이해시켜 자진해서 오지 않도록 하는 게 맞다. 그 학생들에게서 “유엔 인권위원회 제소”라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초청 대상자일뿐이니 오라 가라 하는 건 덕성여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학생들에게 그건 어처구니 없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근거 없는 ‘집단 불안’과 ‘인권 경시’에 젖어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로도 새삼 확인한다. 정말 무서워해야 할 것은 에볼라가 아니라 이런 후진적인 인권 감각이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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