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사라졌다" 공언이 빈말로… 李 청장 뒤늦게 "점검반 편성 계획"
군대뿐만 아니라 군 복무를 대체하는 의무경찰 사이에서도 가혹행위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의경 생활문화 개선 활동 이후 구타 및 가혹행위가 거의 사라졌다고 공언해온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3일 오후 4시쯤 서울 남대문경찰서 방범순찰대 취사장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취사병 최고 선임 최모(22) 상경은 두 달 늦게 입대한 정모(22) 상경을 취사장 구석에 있던 330ℓ 크기의 냉장고에 들어가게 했다. “혼자 식사준비를 다 하라”는 농담을 했다는 이유였다.
이 가혹행위는 정 상경이 사흘 뒤 행정소대장과 면담을 하던 중 드러났다. 면담 결과 최 상경은 올해 5월에도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정 상경을 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가는 조리복 살균기 안에 들어가게 했던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가혹행위를 확인한 경찰은 지난달 17일 최 상경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 즉시 타 경찰서로 전출시킨 뒤 1주일 영창 입감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5월 25일에는 청주 흥덕경찰서 방범순찰대원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의경이에요. 살려주세요’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선임이 후임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등 41가지 가혹행위를 고발한 글이었다. 경찰청은 다음날부터 이틀간 진상조사를 벌여 후임에게 심한 욕설을 한 선임 의경 2명을 충북경찰청 내무반에 격리시키는 징계를 내렸다.
최근 의경 전역 후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옛날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48시간 잠 안 재우기, 여름철 선임들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후임이 밤새 모기 잡기 등 의경들간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경 전역자들은 가혹행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6월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제대한 김모(25)씨는 “남자라면 부조리를 참아야 하고 이를 알리는 것은 비겁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이런 문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도해줄 사람이 부대 안에 없어서 사고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4일 뒤늦게 점검에 나섰다. 이날 이성한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의경 부대에 대한 경찰청 차원의 점검반을 편성, 현장에 나가 의경들의 목소리를 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일선 지휘관의 책임 강화와 내부고발자 보호를 주문했다. 강정숙 전국 의경 부모모임 대표는 “소대장 등 지휘관이 내무 부조리 척결 의지를 얼마나 갖느냐에 따라 그 부대는 천국이나 지옥이 될 수 있다”며 “가혹행위를 알고도 묵인하는 지휘관이 종종 있는데, 찾아내 중징계를 내려야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대 내 가혹행위는 결국 내부고발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현재 경찰과 군이 시행하는 ‘소원수리’ 등 신고체계는 고발자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크다”면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감찰기관을 만들어 내부고발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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