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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떠난 얄개, 손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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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떠난 얄개, 손창호

입력
2014.08.0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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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청춘 스타 손창호씨가 1998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그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던 90년 모습과 세상을 뜨기 전 병원에서의 모습(작은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0년대 청춘 스타 손창호씨가 1998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그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던 90년 모습과 세상을 뜨기 전 병원에서의 모습(작은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예요?” 눈을 깜박이던 화면 속의 초라한 남자가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바다요. 바다가 보고 싶어요. 쪽빛 속초 바다…”

시커먼 얼굴에 초점 없는 퀭한 눈동자. 시한부 선고에도 불구하고 연신 담배를 피워 물던 그의 눈에 반짝 희망의 빛이 보였다. 벌써 그의 마음은 동해 바다에 닿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바다를 볼 수 없었다. 방송이 나간 며칠 후, 그의 육신은 한줌의 재가 되어 속초 바다에 뿌려졌다. 한줌 유골을 품은 쪽빛 바다는 으르렁 그르렁 파도만 일렁거렸다.

1998년 8월 5일 새벽,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손창호씨가 서울 삼각산 밀알기도원에서4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70년대, 영화‘얄개’시리즈에 등장해 주인공 이승현과 함께 국민들에게 큰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던 그가 이토록 불우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을 등질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퉁퉁한 얼굴에 코믹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 앞에 나선 그는 당시 이덕화 임예진 등과 호흡을 맞추며 하이틴을 대표하는 청춘스타의 대명사였다.

서울 중동고 3학년 재학 중이던 70년, 문화방송 공채탤런트로 데뷔한 손창호는 석래명 감독의 ‘얄개’시리즈에서 얄개(얄궂은 짓이나 행동을 일컫는 말로 1950년 소설가 조흔파가 ‘학원’잡지에 연재하던 명랑소설 ‘얄개전’에서 따온 말) 이승현의 선배로 나와 서로 골탕을 먹이는 역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과자 속에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빙과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해태제과의 ‘시모나’ 광고에 출연해, 당대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임예진과 알콩달콩 헤헤거리며 연기하던 모습은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줬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였지만 가족사는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81년 결혼 후 곧바로 이혼했고 하이틴 오락물까지 인기가 시들해지자 영화감독 변신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가 돌아와 선보인 작품은 한국여성의 일본 술집생활을 그린 ‘동경아리랑’. 하지만 시나리오 주연 제작 감독 등 1인 4역을 맡아 90년 개봉한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며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이후 빚에 쪼들려 방황하던 그는 홀연히 대중으로부터 모습을 감춰버렸고 그렇게 잊혀져 가던 그는 98년, 한국방송의‘영상기록 병원 24시’를 통해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당뇨병과 신부전증에 시달리며 치료비가 없어 행려병자로 생활하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팬들을 우울하고 안타깝게 만들었다.

TV 화면을 통해 쪽빛 바다가 보고 싶다고 간청하던 그는 자신의 꿈을 뒤로하고 그 해 8월 5일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은 그의 딸 손화령이 영화배우로 데뷔해 아버지의 못다한 꿈을 잇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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