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녹조문제가 환경문제의 중심에 자리하는가 싶더니 올해는 큰빗이끼벌레에 그 지위를 넘겨주는가 보다. 생태학자로서 사람들이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지만 관심이 제한된 부분에만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대부분 (약 65%)이 산지로 이루어진 탓에 경사가 급해 내린 빗물이 단기간 (1~3일)에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결국 이용 가능한 물이 빠르게 사라진다. 따라서 하천에서 평수량 및 갈수량의 크기는 대단히 작은 반면에 홍수량은 매우 커서 하천의 유량 변동이 아주 심하다.
그러나 우리의 주식인 수생식물 벼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홍수기에 집중되는 빗물을 모아 갈수기 동안 사용하기 위해 보나 댐을 건설하며 하천의 흐름을 통제해 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하천은 순수한 하천이라기보다는 반은 하천이고 반은 호수이다. 국가의 하천 수질 관리 기준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 하천에서 녹조는 왜 그렇게 많이 발생하는 것일까? 녹조는 부유생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흐르는 물이 이루는 하천 생태계에서는 그렇게 번성할 수 없다. 반은 하천이고 반은 호수인 우리 하천에서 호수 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에 녹조 발생이 많은 것이다. 그것은 1960년대에 발행된 생태학 논문이나 교과서에서도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면 큰빗이끼벌레는 왜 생긴 것일까? 이 생물은 생물, 무생물에 관계없이 물체에 부착하여 살거나 떠다니면서 생활하며 보통 군체를 이루어 살아간다. 따라서 이들 또한 물 흐름이 빠른 하천에서는 크게 번성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과연 녹조와 큰빗이끼벌레 발생뿐일까? 4대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하천에는 그 밖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아간다. 문제가 있는 생물들도 많다. 특히 모든 생물의 먹이가 되고 서식기반으로도 기능하는 식생분야가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줄이나 부들이 자라는 하천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 하천과 같이 흐르는 물보다는 정체수역에 자라는 식물들이다. 갈대가 심어진 하천도 많지만 갈대는 주로 하천의 하류에 자란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4대강 사업은 물론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주관한 각종 복원사업은 하천을 살리겠다고 벌인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복자기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온통 하천을 뒤덮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산에 자라는 나무들인데도 말이다. 하천변에 자라는 식물들은 산에 자라는 식물들과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줄기조직에서 차이가 있다. 하천변에 자라는 식물은 연한 조직을 가지고 있어 잘 휜다. 따라서 홍수가 나도 잘 꺾이지 않고 휘어져 홍수를 흘려 보내고 나서 다시 곧추 선다.
뿌리도 차이가 있다. 흔히 뿌리들의 모임인 근계가 발달하여 홍수 시에도 쓸려 내려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또 물에 잠겨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산에 자라는 나무들은 조직이 연하지 않아 잘 휘지 않고, 뿌리가 발달하지 않아 홍수 시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혀 홍수 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물에 잠기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하천 변에 심으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하천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거르는 작용도 부족하다.
게다가 하천은 외래종 천국이다. 메타세쿼이아, 중국단풍, 가죽나무,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미국쑥부쟁이, 개망초 등이 하천을 온통 점령하여 자생종들이 설 자리가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 중에는 비용을 투자하며 일부러 들여온 것들이 아주 많다는 데 있다.
이들 모두가 하천에서 문제가 되는 생물들이다. 녹조나 큰빗이끼벌레보다 하천에서 더 넓은 면적에 걸쳐 있고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왜 우리의 눈에는 이렇게 큰 것들은 보이지 않고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만 보이는 것일까? 문제가 많은 우리의 하천을 되살리기 위해 보다 큰 시각과 긴 안목으로 하천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가의 하천관리 수준도 높여야 할 시점이다.
이창석 서울여자대학교 생명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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