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기술방식을 결정한 과정이 너무나 허술하여 믿음이 가지 않는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각 공무원들이 서로 다른 방식의 통신기기를 사용하면서 소통이 제대로 안 돼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이 추진됐으나 지금까지 결정을 못하고 있던 사안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조속히 결론 내겠다고 말하자 불과 2개월 만에 LTE 자가망(전용망) 방식으로 정해버렸다. 11년을 질질 끌다 2개월 만에 덜컥 결정한 것이다. 정부도 졸속 결정에 따를 적지 않은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우선 중복투자의 문제다. 10여년간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이 지지부진하자 서울 경기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울산 등 주요 광역시 경찰과 일부 지역 소방서들은 이미 테트라 방식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테트라는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T)가 개발한 무선통신 시스템으로, 모토로라에서 장비와 무전기 등을 공급한다. 이번에 우리 정부가 LTE망으로 최종 결정을 했으니 일부 지역에서 먼저 도입한 테트라 방식은 중복투자가 됐거나, 결국 무용지물이 될 소지가 있다. 정부는 현재 테트라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지역부터 LTE망을 구축하고, 테트라 사용 지역은 추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테트라용, LTE용 무전기를 두 개씩 들고 다니자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또 기존 통신사들이 사용하는 LTE 상용망을 쓰지 않고 자가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으나 비용과 시간이 문제다. 재난망을 자가망으로 구축하는 이유는 보안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산이 최대 5조원이 필요한데다 망을 구축하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정부는 자가망을 구축하되 음영지역 해소를 위해 상용망을 일부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LTE 기술표준의 문제도 신경이 쓰인다. 미국과 유럽도 장기적으로는 재난망을 LTE망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이나, 이들이 기술표준을 만들기까지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정부는 기왕에 우리가 LTE 기술표준을 만들어 보급하면 로열티도 받고 기술종속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둘러 만드는 기술표준이 세계표준으로 자리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좀더 현실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우선 기존의 테트라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되, 데이터통신 등 미진한 부분은 일단 LTE 상용망으로 보충하고, 장기적으로는 LTE 자가망으로 옮겨가는 접근법 등 신중하고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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