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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노인들 손자 위해 지갑 열었다

입력
2014.08.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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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부유층 겨냥 작년 한시 도입 13개월 만에 신탁상품 5조원 돌파

제도 영구화 요구 목소리 높아져, "상속세 회피 수단 악용" 반대도

조부모가 손자들에게 교육비 명목으로 재산을 증여할 경우 과세를 물리지 않는 제도를 활용한 ‘교육자금증여신탁’이 일본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지난 해 4월 부유층 고령자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마련한 이 제도는 장롱에 묻힌 유휴자금을 시중에 끌어들인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반면 부유층의 세금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등 찬반양론이 거세다.

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조부모가 손자의 교육비를 미리 증여해도 과세하지 않는 ‘교육자금 일괄증여 비과세제도’를 도입했다. 자식이나 손자 1인당 1,500만엔 한도 내에서 일괄 증여해도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기한은 내년 12월까지다.

일본의 금융회사들은 이 제도에 근거해 ‘교육자금증여신탁’상품 판매에 나섰고 13개월만인 6월 말 현재 7만6,851건에 5,000억엔(5조원)을 넘는 5,193억엔을 모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조성한 사학 연간예산 4,400억엔을 뛰어넘는 규모다.

노인들이 손자들을 위해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각 금융기관은 더 많은 자금 확보를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즈호신탁은행이 마련한 설명회에 참석한 60대 고객은 즉석에서 손자 4명에게 200만엔씩 증여하는 신탁에 가입했다. 또 다른 고객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지급하는 것보다 한번에 200만~300만엔씩 증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가입 이유를 말했다. 이 은행은 설명회 등을 통해 6,000건 이상의 가입을 성사시켰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일본의 교육비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국공립의 경우 평균 742만엔(7,468만원), 사립은 2,000만엔(2억원ㆍ문과기준), 사립 의대는 4,000만엔(4억원) 정도가 들어간다. 최근 30년 동안 국립대 수업료는 2.5배, 사립은 2배가 상승하는 등 교육비 수요는 기하급수로 늘고 있지만 정작 교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30, 40대의 수입은 많지 않다. 반면 거품 경제 시절을 거친 60, 70대의 주머니 사정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들이 가진 돈을 시중에 유통시켜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 제도 도입의 배경이었다. 내년 12월 기한까지 1조2,000억엔 가량의 증여금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의 영구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물론 빈부 격차를 더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 고바야시 마사유키 도쿄대교수는 “증여를 받을 수 있는 가정은 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어 자금 운용에 따른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빈곤층에는 아무 이득이 없다”며 “조부모의 재산 여부에 따라 또 다른 교육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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