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학교 학생 7명과 학부모 커피 전문가 수업 들으며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준비
"한 가지에 높은 집중력 특성 살려 콩 선별하는 피커 역할 맡을 예정"
“커피를 내릴 때 한번에 많은 물을 부으면 안 됩니다. 원두 특성에 따라 물 붓는 시간도 달라져야 해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면목동 태은교회 2층 예배실에서 수강생 20명은 최우성(51) 목사의 핸드드립 설명을 들으며 커피 추출기에 조심스레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넣고 물을 따랐다. 진한 커피향이 실내에 퍼지자 여기저기서 “우와”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이들은 바리스타를 꿈꾸는 서울 구의동의 발달장애 특수학교인 광진학교 학생 6명과 학부모 14명이었다. 이들의 손놀림은 서툴렀지만 열정만큼은 여느 바리스타 준비생 못지않았다.
학교 졸업 후 진로가 불투명한 발달장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협동조합 형태의 카페 개점을 통해 사회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1일 광진학교 학부모회에 따르면 학생 7명과 학부모 24명은 이달 내 카페 개점과 11월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3월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2시간씩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에 앞서 수업을 들었던 학부모 17명도 곧 자녀들을 합류시킬 예정이라 수강생은 늘어날 전망이다.
학부모회장 송명금(51ㆍ여)씨는 “발달장애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 비율이 100명 중 한두 명에 그칠 정도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며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맞벌이 하던 엄마도 일을 그만둬야 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 바리스타 수업은 이런 현실에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수업은 학부모회가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커피전문가인 최 목사를 지난 3월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바리스타 자격증만 6개를 보유한 최 목사는 진로가 막막한 발달장애 학생들의 사연을 듣고서 흔쾌히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최 목사는 수강생당 1만 원가량의 원두 값만 받고 수업을 진행 중이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자폐성장애 1급 한석희(16)군은 “커피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적장애 2급 장준재(19)군은 “곧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 얼른 사람들에게 맛있는 카푸치노와 모카라테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카페는 서울 지하철7호선 용마산역 근처에 문을 열 예정이다. 수강생들은 발달장애인이 직접 참여하는 카페로는 처음이라고 했다. 서로 들어주며 돕는다는 뜻에서 이름도 ‘들무새’로 정했다. 조합원 학부모 10명이 낸 3,000만원을 기반으로 20㎡ 규모의 테이크 아웃 카페 1호점을 낸 다음 점포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수익금은 조합원인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개점 후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바리스타의 역할 중 하나인 ‘피커(picker)’를 맡을 예정이다. 피커는 커피 콩 중 썩거나 벌레 먹은 것을 고르는 사람이다. 엄마들은 학생들이 선별한 콩으로 로스팅, 블렌딩 과정을 거쳐 커피를 만든다. 최 목사는 “콩을 고르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커피의 최종적인 맛을 좌우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며 “한 가지 일에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발달장애 친구들이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시간이 지나면 콩 고르기뿐 아니라 원두를 볶는 로스팅이나 커피 향을 감별하는 큐그레이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ㆍ사진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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