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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더위를 피하는 법

입력
2014.07.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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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시끄럽고 삼복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날에는 조선의 큰 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임진강으로 피서를 나가 지은 시에서 ‘모자도 옷도 훌러덩 벗어야 상쾌하리니 실오라기 하나 몸에 붙어야 땀이 줄줄 흐른다네(露頂?體方快活 一絲在身終汗沾)’라고 한 대로 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옷을 벗은들 마음의 답답함이 풀리고 무더위가 사라지겠는가?

17세기 정칙(鄭?)이라는 학자는 ‘여름날 병이 들어(夏日病後)’라는 시를 지어 답을 말했다. “선생은 대 그늘 아래 마루에서 편안히 누워, 이글거리는 삼복더위의 붉은 태양을 고고하게 보노라. 다리 내어놓고 얼음을 밟는 것조차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마음이 조용하면 절로 시원함이 생기는 법(先生高?竹陰堂 傲視三庚赫日長 赤脚踏?何太躁 不知心靜自生凉)”이라 했다. 삼복더위의 이글거리는 태양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자세가 더위를 피하는 법이다. 정칙은 이 시의 주석에서 “더위를 피하는 것은 다른 기술이 없다. 오직 마음을 맑게 하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묘한 법이다. 세상 사람들은 높고 통쾌한 누각을 즐겨 찾지만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더위를 감당할 수 없는 법”이라 했다.

마음의 공부를 중시한 조선의 학자들은 더위가 양(陽)과 동(動)의 기운에서 비롯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정(靜)의 상태를 유지할 때 무더위가 사라지는 음(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여겼다. 영의정의 지위에 있던 이산해(李山海)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빨리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가 지금의 울진 평해 땅에 유배됐다. 한 여름 무더위를 유배지의 게딱지처럼 좁은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 때 지은 ‘정명촌기(正明村記)’라는 글에서 이산해는 더위를 이기는 법을 이렇게 말했다.

“한여름 복더위에 작은 집에 거처하고 있더라도 눈을 감고 꼿꼿하게 앉아 있노라면 몸에 땀이 흐르지 않는 법이요, 솜옷조차 얼어터지는 엄동설한에 얼음판에 거처하더라도 목을 움츠리고 발을 싸고 있노라면 살갗이 터지지 않는다. 혹 스스로 인내하지 못하여 미친 듯이 날뛰면서, 여름철에는 반드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자를 찾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방을 찾아 의탁하려 들면 정자나 방도 쉽게 찾지 못하거니와 내 몸 또한 병이 들 것이다. 비유하자면 먼지를 쓸어버리는 것과 같다. 먼지를 쓸 때마다 먼지가 더욱 많이 생겨나니, 쓸지 않고 그냥 두면 먼지가 가라앉는 것보다 못하다. 우물을 치는 것에 비유하면 이렇다. 우물물을 흔들어 놓으면 물이 더욱 탁해지니, 차라리 흔들지 않고 있노라면 물이 절로 맑아지는 것만 못하다. 이 모두는 고요함의 힘이 움직임을 제압하는 것이다.”

이산해는 움직일수록 더위가 더해지니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라고 권했다. 이것이 선비들의 피서법이다. 이산해와 비슷한 시대를 살다 간 학자 김우급(金友伋)도 ‘더위를 보내는 법(遣暑)’이라는 시를 지어 같은 뜻을 노래했다. ‘어찌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는지, 오늘 비로소 생각을 해보았지. 껍질 벗은 죽순에 대나무 하나 늘었고, 너울너울 춤추는 발도 작은 집을 덮었네. 몸이 한가하면 괴로운 더위는 없는 법, 마음이 고요하면 절로 시원함이 생긴다네. 꼭 차디찬 얼음물 찾을 것 있겠는가! 시원한 샘물이 바로 집 곁에 있으니.(何如能避暑 今日始思量 解?添新竹 ?簾蔽小堂 身閒無苦熱 心靜自生凉 不必求?冷 寒泉在舍傍)’

어찌하면 더위를 잊을 수 있는가? 몸이 한가롭고 마음이 고요하면 절로 시원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비를 맞은 죽순은 쑥쑥 자라 대숲을 이루니 이를 바라보면 그 자체로 피서가 될 것이다. 선뜻 불어오는 바람에 발이 춤을 추니 한낮의 햇살도 절로 이르지 않는다. 이만하면 더위는 절로 사라진다. 그래도 혹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면 얼음 한 줌을 손에 들고 있는 것도 굳이 마다할 일은 아니다. 조선 말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은 “더위를 피하고 시원한 기운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매우 더운 날 얼음을 손바닥 가운데에 두면 온몸이 시원해진다. 얼음을 두 젖꼭지 위에 올려놓고 부채질을 하면 시원한 바람이 쏴하고 불어 한기가 배 속으로 스며든다. 통쾌하고 상쾌함이 청량산(淸凉散) 한 첩을 복용한 것과 같다”라 했으니, 따라 해 봄 직하지 않겠는가?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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